장정민 한국사진문화연구소 연구원, 미술평론가

강홍구의 사진은 ‘집 자체에 대한 오마주’

강홍구는 드라마 속 집들처럼 이제는 사라져 버렸거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져버릴 집들을 오랜 시간 동안 촬영해 왔다. 그가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그의 작업은 재개발을 앞두고 있거나 진행 중인 곳에서 숨을 거두기 직전의 집들에 대한 기록 사진이 되었다.

그가 이런 집들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것은 서른 번이 넘도록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개인적 경험이 큰 역할을 했다. 물이 새는 집, 옥탑방, 지하방 등 수많은 집을 전전했던 그에게 집이라는 대상은 영원한 화두일 수밖에 없었다. 그저 자신의 눈에 자주 띄었을 뿐 그런 곳들을 의도적으로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는 그의 말은 이러한 개인적 경험이 작업의 원천이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매축지24, pigment print, 90x225cm, 2012

그래서인지 그의 사진은 재개발이라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현상에 대한 비판적 태도와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한 감정의 표현 어디쯤에 교묘하게 자리하고 있다. 어떤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집에 대한 작업을 시작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사실 그가 무차별적 개발논리나 집을 투기의 목적으로 바라보는 태도에 대해 비판적 인식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이 작품의 전면에 드러나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는 그의 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또한 그는 사라질 운명에 처한 대상을 탈색시키고 재구성해 로맨틱한 노스탤지어로 끌고 가는 낭만주의적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요컨대 그의 사진 속에서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나 대상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읽힌다면 그것은 집에 대한 관객의 태도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해 보인다. 따라서 강홍구의 사진 작업은 집에 대한 작가의 특정한 목소리가 투영된 결과라기보다 집 자체에 대한 오마주라고 보는 편이 적당하다. 이와 관련해 그의 작업들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그의 사진 속에서 사람을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사실 집이란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이란 점에서 사람과 집을 함께 재현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나 생각할 여지는 분명 존재한다.

영도04, pigment print, 100x120cm, 2012

하지만 그는 집에 대한 초기 작업에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거리를 두고 집 자체에 초점을 맞춰 왔다. 집과 사람을 함께 촬영할 경우 그 사람과 집은 하나의 연결고리로 얽매이게 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과적으로 집을 집 자체로 보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 뻔한 탓이었다. 가령 재개발 지역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분노와 절망감 같은 감정들이 사진 속의 집들에 투사되면서 자칫 집이라는 대상 자체에 대한 다양한 사유의 흐름을 막아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람을 등장시키지 않는 대신 집이 처한 전체적인 시퀀스를 재현함으로써 거기에 살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짐작케 해준다. 말하자면 사람의 손이 닿은 것들을 통해 그 사람을 추측케 함으로써 저마다의 집을 관객에게 보여준 것이다.

사진의 본질은 ‘그것이 거기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강홍구의 작업은 집들에 대한 영정 사진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영정 사진은 사진 그 자체만으로는 매우 객관적이며 기계적인 외형을 가지고 있다. 무미건조한 배경에 화면의 대부분을 사람의 얼굴만으로 채운 영정 사진은 외견상 증명사진과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같은 사진이라 하더라도 그것의 쓰임은 사진을 볼 때의 태도와 감정을 전혀 다른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사진 속 인물이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볼 수밖에 없는 영정 사진은 수많은 감정과 생각을 샘솟게 만드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강홍구의 사진 앞에서 관객은 집에 대한 수많은 생각에 빠지게 된다. 더 높고 화려한 집에 대한 욕망 때문에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집의 운명에 대해, 새로운 것을 위해서 기꺼이 과거를 내팽개치는 우리 사회의 탐욕에 대해, 나와 내 가족이 살았던 잊혔던 집의 온기에 대해, 사진 속 집에서 쫓겨난 사람들의 운명에 대해, 관객은 사라진 집으로부터 뻗어 나온 생각의 가지들을 무한히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비교적 최근 작업인 <그 집> 연작은 사진 자체의 표현만으로는 드러낼 수 없는 이러한 생각의 가지들을 채색이라는 수단을 통해 시각화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사진은 대상을 거의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 때문에 감정을 전달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집-암벽, pigment print, ink, acrylic, 200x105cm, 2010

강홍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진은 상당히 공식적(official)이고 뻔뻔한 매체인 것이다. 페인팅을 전공했던 그에게 사진에 색을 입히는 일은 이런 난점을 해소하는 가장 빠르고도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집의 지붕이나 주변의 꽃들 따위에 물감을 덧입혀 대상에 대한 자신의 감정, 그리고 집에 대해 갖고 있는 무의식적 인상 따위를 표현한 것이다. 더 나아가 이는 관객들로 하여금 집에 대한 그들만의 감정과 무의식을 자극한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자신의 집에 대한 기억을 어렴풋하게 깨어나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집이라는 대상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말했다. 사진의 본질이란 ‘그것이 거기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데 있다고. 그렇다. 사진이 그림이나 다른 재현 수단과 다른 궁극적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 사진은 재현의 대상이 카메라 앞에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는 매체이다. 그래서 그 대상이 현재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 사진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그것을 현실 앞에 데려다주는 유일한 수단이 된다. 강홍구는 이러한 사진의 본질을 이용해 관객으로 하여금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집을 눈앞에 현현시킨다. 그리곤 관객들에게 말한다. 이 집에 사람이 살았다고, 그게 당신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이 세상에서 집이란 당신에게 무엇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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