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민 한국사진문화연구소 연구원, 미술평론가

지난 일본 311 대지진 때도 그랬다. 유례없는 대재앙의 현실 속으로 세계의 카메라가 속속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찍은 사진을 보며 자연에 대한 공포를 느꼈고, 결국 안도했다.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을 말이다. 재앙의 현실을 재현한 사진들은 대개가 그렇게 안전한 곳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생산되고 소비되었다. 예술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기어코 그곳으로 들어간 사진가들도 상당수였다. 그리고 이들 중 다수에게 있어 동일본 지역 사람들의 절망은 새로운 시각적 재현을 위한 기회에 불과했다.

박진영 개인전_사진의 길 Archieve Series, Landscape 02

폐허 속에서 찾은 사진가의 길

사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의 현상과 그 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전개해 왔다. 자본주의와 계급의 문제, 분단과 이념의 문제 등 한 사회의 특수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등 그의 카메라는 언제나 사회의 구조와 체계를 향해 있었다. 다시 말해 박진영 사진의 출발점은 언제나 소재로서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었다. 한 사회의 근간을 이루지만 일상 속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침투해 있어서 잘 눈치 채지 못하는, 시각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것들을 그는 사진이라는 표면으로 드러내 왔다.

나토리 名取市_공동묘지(14.2m)

그런 그에게 있어 <히다마리>는 사진가로서 일종의 일대 전환점이었다. 실제로 그는 이 작업 전까지 “사진가란 항상 사회를 향해 발언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런 강박관념은 사진이란 매체와 끊임없이 대면하는 가운데 서서히 사라지게 되고, 그 대신 사진 그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들이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는 그 의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그가 갖은 방법을 동원해 동일본 대지진의 참혹한 현장 속으로 들어갔던 것도 바로 사진에 대한 자신의 답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재앙의 현장을 확대 재생산하고 그것을 대중들이 소비하도록 하겠다는 불순한 의도 따위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이곳에서 촬영한 결과물을 선보였던 전시의 제목처럼 그것은 자신이 떠난 ‘사진의 길’이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그곳에서 촬영한 사진 중 쓰나미가 할퀴고 간 참혹한 폐허의 현장을 재현한 것은 적다. 오히려 그는 대재앙 이후에 그곳에 남은 것들을 사진으로 담는 일에 몰두했다. 주인을 잃은 카메라와 사진 액자들, 그리고 어느 초등학생이 매고 다녔을 란도셀 등에 주목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사진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사진 속 사물 그 자체가 아닌, 어쩌면 더는 그곳에 존재하지 못하게 된 그 물건들의 주인을 상상하게 만든다. 존재하는 것을 통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 박진영이 찾아 헤맨 사진의 본질은 바로 이것이었는지 모른다. 사진이란 존재하는 것을 재현하지만, 결국 그것이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 여기’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것임을 말이다.

나토리 名取市_사진액자 (14.7m)

박진영이 센다이 현의 한 초등학교에서 발견한 카네코 마리의 앨범은 이러한 사진에 대한 그의 깨달음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일본의 한 아마추어 사진가가 딸의 성장 과정을 담은 이 앨범은 사진 속 주인공의 생사를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사진 속 아이가 언젠가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다는 사실만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박진영은 폐허 속에서 사진의 길을 찾았다. 그리고 앞으로 그가 우리에게 보여 줄 사진의 길이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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