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기임원 ‘꼼수’로 연봉 공개를 피해왔던 재벌총수들의 보수가 공개될 가능성이 커졌다.

18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소위와 전체회의에서는 고액 연봉을 받는 상장회사 임직원의 보수 공개 범위를 확대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개정안에서는 연봉 5억원 이상인 임직원 중 상위 5명의 개별보수를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2013년 개정된 자본시장법에 따라 지금까지는 5억원 이상의 보수를 받는 등기임원에 대해서만 개별보수를 공개해 왔다. 그러나 공개 대상을 등기임원으로 한정하자 재벌총수와 2~3세는 등기임원에서 사퇴해 보수 공개를 회피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총수가 있는 40개 대기업집단(1356개)에서 재벌총수가 이사로 등재된 곳은 103개로 7.7%에 불과했다. 2013년에는 11%였으나 보수 공개를 꺼린 재벌 총수와 2~3세가 미등기이사로 전환했다는 것이 이번 법안을 발의한 김기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설명이다.

19일 김 의원에 따르면 2002년 등기이사가 된 정용진 부회장은 보수공개를 앞둔 2013년 등기임원에서 사퇴했고 최태원 SK 회장은 2014년, 김승연 한화 회장은 2015년에 미등기이사로 물러나 공개대상에서 빠졌다. 삼성그룹 등기임원 311명 가운데 총수 일가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유일하다. 이건희 회장, 이재용 부회장 모두 미등기임원이다.

대기업 단체에서는 사생활 침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9일 공동자료를 통해 “연봉은 개인정보로 사생활 비밀 침해의 우려가 있다”며 “상위 5인을 무조건 공개하는 경우 높은 성과를 내 많은 급여를 받은 직원들까지 공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주요국가에서는 임원 개별보수 공개가 회사의 투명성 제고나 실적 개선과는 상관성이 적다는 실증연구가 있다”며 “오히려 연봉 공개 임원들이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지적된 바 있다”고 했다.

이러한 지적에 김기준 의원은 “2014년 귀속소득을 기준으로 봤을 때 총 급여가 5억원을 초과하는 개인은 전체의 0.04%다. 상장회사에서 5억원 이상 받으면서 동시에 연봉 상위 5위에 드는 직원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면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고,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는 재벌총수의 행태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봉 공개가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했다. 김 의원은 “지금까지 연봉이 공개된 600여명의 임원 중 범죄의 표적이 돼 문제가 있느냐”고 반문한 뒤 “우리 국민은 일부 재벌총수가 횡령과 배임, 사기 등 기업을 좀먹는 화이트범죄로 검찰의 표적이 됐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