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진 작가, 중앙대학교 미술학부 겸임교수

12세기 국내 소개돼 19세기까지 사랑받은 주제

이 소상 지역과 동정호 주변은 시인들의 문학적 소재로 많이 다뤄져 왔던 곳이다. 당나라의 이백과 두보, 범중엄이 유명하고 여동빈이라는 신선이 살면서 선술을 부린다고 하는 악양루는 동정호의 북동부에 있어 많은 문인과 서예가들의 단골 주제로 등장하게 된다. 따라서 송나라 때의 송적이 소상팔경도를 그리기 이전부터 고전문학의 단골 주제로 소상 지역은 널리 알려졌었다. 그리고 이 소상을 주제로 한 시는 당나라 때에 성행하게 되는데 그 시대에 이곳을 다녀간 문인과 관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평생 한 번 가보지 못한 중국의 자연 경을 이상화하여 산수의 아름다움 전형으로 받아들인 소상팔경도는 12세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19세기까지 장장 7세기에 걸쳐 가장 널리 사랑받았던 주제다. 어찌 보면 중국에서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인기를 끌었다고 볼 수 있고, 이후 일본 산수화에도 일정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 주제는 화원 화가뿐만 아니라 조선후기(약 1700~1850)에 이르면 문인화가들 사이에서도 그려졌으며, 청화백자와 민화 등 기층민의 생활미술에까지 저변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조선중기(약 1550~1700) 이후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나 일반 산수화에 변용되어 유행하였다.

소상팔경도의 여덟 곳

소상팔경도의 여덟 곳은 소상야우(瀟湘夜雨), 평사낙안(平沙落雁), 연사만종(煙寺晩鍾), 산시청람(山市晴嵐), 강천모설(江天暮雪), 원포귀범(遠浦歸帆), 동정추월(洞庭秋月), 어촌석조(漁村夕照)이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은 이 주제는 그곳이 지닌 수려한 경치뿐만 아니라 시인과 화가 개개인의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낼 수 있는 변화 많은 자연경관을 갖고 있어 가능했다고 본다.

소상야우, 중국 명 16세기 비단에 먹, 각 24.3x44.8cm, 중국상해박물관 소장

소상야우 (瀟湘夜雨)=상수는 후난성 영주에서 소수와 만나 소상이라 불리는 곳이다. 소상의 두 강이 만나는 곳에 안개 비가 내리는 밤 풍경을 말한다. 엷은 먹빛으로 안개 속 희미하게 보이는 대나무 숲과 나무, 작은 배 몇 척이 떠 있는 강가의 정경을 그린 그림으로 쓸쓸하고 서정적인 정경을 잘 보여준다.

평사낙안, 중국 명 16세기 비단에 먹, 각 24.3x44.8cm, 중국상해박물관 소장

평사낙안 (平沙落雁)=중국 4대 명산의 하나인 형산의 가장 높은 회안봉을 소재로 한 그림으로, 회안은 큰 기러기가 이 봉우리로 날아와 다시는 남쪽으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평사낙안은 이 회안봉 아래 아득히 넓은 들과 모래사장에 갈대는 무성하고, 한 무리의 기러기 떼가 우거진 수초에 이끌려 오르락내리락 선회하다가 서서히 모래사장 위로 내려앉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동정추월, 중국 명 16세기 비단에 먹, 각 24.3x44.8cm, 중국상해박물관 소장

동정추월 (洞庭秋月)=맑게 갠 가을 달이 밝게 비추는 밤, 동정호에 바람이 그치고 물결은 거울과 같이 잔잔할 때 호수에 배를 띄워 달빛과 물빛이 서로를 밝게 비추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와 같은 즐거운 밤이 또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게 된다. 매우 간결한 표현으로 화면 가득 동정호를 달빛에 흔들리는 잔물결을 엷은 먹색을 담백하게 처리하였고, 화면 왼쪽 아래에 나무를 그려 넣어 동정호의 확장된 공간감을 잘 묘사하고 있다.

연사만종, 중국 명 16세기 비단에 먹, 각 24.3x44.8cm, 중국상해박물관 소장

연사만종 (煙寺晩鍾)=형산은 불교 성지로 산 둘레에 수백 개의 절이 있다. 저녁이 되어 어둠이 뒤덮은 고요한 산사에서 깊고 웅장한 종소리에 나그네가 깊은 사색에 빠져드는 정경을 묘사하고 있다.

강천모설, 중국 명 16세기 비단에 먹, 각 24.3x44.8cm, 중국상해박물관 소장

강천모설 (江天暮雪)=상강 한 가운데 있는 섬인 규자주의 한겨울 눈 덮인 모습을 취하여 적막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다.

산시청람, 중국 명 16세기 비단에 먹, 각 24.3x44.8cm, 중국상해박물관 소장

산시청람 (山市晴嵐)=하늘은 맑게 개고 상강 옆 시장을 배경으로, 장이 거의 끝날 무렵 사람들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산기슭에 다시 평온함이 찾아오고, 강 물결은 반짝거리며 산은 선명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원포귀범, 중국 명 16세기 비단에 먹, 각 24.3x44.8cm, 중국상해박물관 소장

원포귀범 (遠浦歸帆)=저물녘 강에서 고기잡이배들이 돌아오고 가족들은 이들을 기다린다. 그림에서는 비록 한 사람도 없지만 따뜻한 가족애가 잘 묻어나는 그림이다.

어촌석조, 중국 명 16세기 비단에 먹, 각 24.3x44.8cm, 중국상해박물관 소장

어촌석조 (漁村夕照)=해질녘 어촌을 묘사한 그림으로, 세속의 이치를 거부한 은일 처사의 이상향을 은유한 그림이다. 어부는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은둔하며 자신을 성찰하려는 선비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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