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보험회사들이 고객들에게 지급해야 할 보험금을 합법적 사유없이 부당하게 삭감한 사실이 금융감독원 조사결과 드러났지만,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금감원이 지난달 26일 홈페이지에 게시한 제재관련 공시에 따르면 현대해상, 롯데손해보험, 메리츠화재, KB손해보험 등은 보험계약자에게 지급해야 할 보험금을 부당하게 삭감해 지급했다.

현대해상의 보험금 부당지급건은 45건이며, 삭감한 금액은 2억700만원이다. 롯데손해보험도 28건의 계약에 1억9100만원의 보험금을 부당 삭감했다. 메리츠화재는 130건에 2억400만원을, KB손해보험은 97건에 2억4400만원을 부당하게 삭감했다. 이들은 보험약관상 보험금을 삭감할 사유가 없는데도 ‘자필서명에 흠결이 있다’거나 ‘직업변경 통지의무 위반’, ‘과거병력 고지의무 위반’ 같은 해당 보험사고와 인과관계가 없는 사유를 들어 보험금을 삭감한 것이다. 특히 한 보험사의 경우 직원을 평가하는 ‘보험금 지급관련 성과 평가기준’에서 보험금 부지급과 관련된 평가항목의 비중이 높게 설정돼 있다고 금감원은 지적했다. 바꿔말해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도록 한 직원의 성과 평가가 높다는 얘기다.

금감원은 현대해상, 롯데손보, 메리츠화재, KB손보에 대해 과징금 1000만원, 500만원, 1700만원, 2200만원을 각각 부과하고 해당 직원에 대해서는 ‘자율처리’라는 조치를 내렸다. 자율처리는 금감원 검사결과, 금융기관의 직원이 위법·부당행위를 한 사실이 발견될 경우 당해 기관의 장에게 통보해 관련직원의 책임소재를 규명하고 합당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것이다.

과징금 규모를 떠나 무엇보다 보험금을 고객에게 지급하지 않도록 한 직원을 높게 평가하는 상황에서 보험회사에 자율처리를 맡긴 조처부터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와함께 보험금 부당 삭감으로 피해를 본 고객에 대한 사과나 차액을 돌려주도록 한 조치도 변변치 못해 금감원의 감독의지마저 의심된다.

이와관련 금감원 이상아 팀장은 11일 중기이코노미와의 늦은 통화에서 “현재 담당자가 바뀌어 자세한 내용을 알수는 없지만, 사안의 경중에 따라 수준이 낮은 사안에 대해서는 회사에서 자율적으로 조치하도록 처리하고 있다. 또 삭감돼 지급된 고객에 대해 환급조치를 하도록 보험사측에 권고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조사결과, 보험사가 당연히 지급해야할 보험금을 부당한 이유로 삭감해 지급했다면 이것은 고객의 돈을 떼먹은 사기행위와 다르지 않다. 이를 수준 낮은 사안으로 판단해 자율처리하도록 하고, 떼먹은 돈을 되돌려 주도록 ‘권고’ 수준에 머문 조치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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