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 박근혜 대통령이 파견법·기간제법 등 이른바 노동개혁 5법의 입법화를 강조하면서 “기간제법은 중장기적으로 검토하는 대신 파견법 개정안은 받아들여달라”고 국회를 압박했다. 그리고 그 바통을 경제계가 이어받아 노동 5법을 처리하라고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고삐를 죄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소기업 관련 단체·협회의 모임인 중소기업단체협의회가 21일 ‘경제활성화 입법을 통한 중소기업 육성 대토론회’를 열고, 파견법 개정안 입법화를 논의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날 토론회 발제자를 비롯해 8명의 토론자들은 모두 파견법 찬성론자들로 구성돼 ‘토론회’ 형식을 빌린 일방적 주장을 실은 자리에 불과했다.

토론자의 발언들을 살펴보면, “일본·독일 등 선진국은 파견제도를 실업해소와 일자리 창출 기제로 활용하고 있는 추세”(고용노동부 과장), “일본은 제조업까지 파견을 허용한 결과 2004~2008년 사이 창출된 일자리가 총 137만개에 달하는 등 본받아야 한다”(금속공업협동조합 이사장) 등 논의가 아니라 똑같은 주장만 쏟아져 나왔다. 특히 은퇴자협회장의 발언은 억지스럽기까지 하다. 그는 “현재 만연하는 불법파견을 규제·정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령자·뿌리산업에 대해 파견을 허용하면 불법파견을 합법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노동계 대표가 주장하는데, 이들이 모든 근로자들의 대표인가?”라면서 “정작 일자리가 필요한 중장년층과 일터에 대해 논의를 해 본 적이 있는가?”라고 했다. 한마디로 제도시행으로 중소기업계를 비롯해 우리 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은 무엇이고, 부작용은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 등을 논의한 건전한 토론회장이 아니라 자신과 생각이 다른 반대론자에 대한 ‘성토장’과 흡사했다.

일례로 이날 독일과 일본 사례를 제시했는데, 그들의 주장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 우리보다 10여년 일찍 파견허용을 실시한 일본은 파견근로자 비중이 40%를 웃돈다. 일본의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임금 격차는 우리나라에 비해 나은 편이지만, 일본에서 비정규직 급증 문제는 국가적인 과제로 떠올랐다. 독일은 건설업을 제외한 모든 업종에 파견을 허용하고 있지만, 노조조직률이 80~90%에 달하며 노사간 단체교섭을 통해 파견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노조조직률이 10%도 안되는 우리나라가 무제한으로 파견을 허용할 경우, 온 나라가 비정규직으로 넘쳐날게 불을 보듯 뻔하다.

무엇보다 파견은 ‘사용사업주-파견사업주-근로자’의 다단계 구조를 갖고 있어 근로기준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중간착취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구조다. 옛날 소작료로 100섬을 받던 땅에 악독한 마름을 두었더니 120섬의 소작료가 들어왔다. 이는 소작인의 몫이 그만큼 줄었거나, 그나마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소작인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한 결과이지, 생산성 증대와는 무관하다. 파견(업체)이 ‘마름제도의 현대판’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파견법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애써 외면한 채 한쪽 목소리만 높인 ‘토론회’를 왜 개최했는지 궁금하다.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관련기사 ㅣ 뿌리산업 파견 허용하면 청년실업 해소될까?
• 관련기사 ㅣ 中企 절반 “파견법 동의” “파견법 잘 모른다”
• 관련기사 ㅣ 파견법상 파견기간 초과한 사용사업주는?
• 관련기사 ㅣ 직업안정법·파견법 외 취업개입 중간착취 금지
• 관련기사 ㅣ 비정규직 근로자 늘리는 ‘비정규직 대책’
• 관련기사 ㅣ 비정규직 쟁점 ‘가급적, 노력한다’ 해결 못해
• 관련기사 ㅣ 中企 근로조건 개선없이 청년실업 해결없다
• 관련기사 ㅣ “최장 8년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효과 의문
• 관련기사 ㅣ 업무상 지휘 누가 하는가…파견과 도급 구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