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입주기업 피해실태②] “우리가 마치 북한 핵 실험에 돈을 댄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황당하고 억울하고 답답해 죽을 지경입니다”

한참동안 거래처와 전화통화를 하던 A업체의 B대표가 기자에게 건넨 첫 마디였다. 정부에서 4월10일까지 피해실태 조사를 한다고 자료를 준비하라고 하는데, 관련 자료들은 전부 개성에 있어 정확한 피해 규모를 헤아리기 어렵다고도 했다. 거래처에 필요한 서류들을 요청하고 있지만, 거래처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상황이다.

서울 사무실의 텅 빈 작업장. 거래처를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원단을 새로 구입해 일을 시작해야 하지만 망연자실 손을 놓고 있을 뿐이다.   ©중기이코노미

북측에 두고 온 원부자재만 값만 해도 3억원 정도. 다른 기업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이라고 할 수 있지만, A업체처럼 작은 기업이 느끼는 온도는 다르다. 또 일부 거래처에서는 이미 납품한 물건에 대해서도 결제를 안 해주고 있다고 했다. 이번 일로 인한 손해를 보상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번에 피해를 본 기업이 비단 개성에 공장을 둔 기업뿐이겠습니까? 저희하고 얽힌 거래처만 해도 10여곳입니다. 다들 영세한 회사들이라 1000만~2000만원 손해를 봐도 휘청거릴 겁니다”

개성에서 근무하던 직원 4명은 현재 휴직계를 내고 쉬고 있다. B대표는 4명의 직원들에게 너무 미안한데 당장 그 직원들을 챙길 여력이 없다고 한다.

“명절 지내려 집에 왔다가 그길로 개성공단으로 가는 길이 막혀버렸습니다. 하루 이틀만이라도 기업들에게 미리 알려주고 수습할 시간을 줬더라면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

패션 장신구를 제작하는 A업체는 2008년 처음 개성공단에 들어갔다. 인건비도 비싸고, 무엇보다 재봉틀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입주를 결심하게 된다. 북측 근로자 350여명을 고용, 봉제공장을 운영했다. 그동안 다달이 대출금을 상환해 오면서 적자를 면치 못하다가 지난해 말 처음 흑자로 돌아섰는데 이런 일이 갑자기 생겼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젊은 시절부터 패션사업을 해온 B대표는 재봉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그는 아끼는 재봉틀을 보여주며, 북측에 두고 온 재봉틀만 수백대라고 한숨 짓는다.   ©중기이코노미

“다들 같은 심정일 겁니다. 결론이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죠. 망했구나하고 툭 털고 일어날 수도, 또 개성공단이 다시 열릴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겁니다”

함께 개성에서 사업했던 또 다른 대표는 현재 일당 7만원을 주는 공사장에 나가 일을 하고 있다고 B대표는 전했다. 100억원 규모의 투자를 해 공장을 짓고 현지에서 직원 600~700명을 고용해 사업을 했지만, 지금은 이자도 못 갚을 만큼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또 올해 초 사업을 시작했던 한 대표의 경우 투자금만 쏟아 붓고 사업을 시작도 못했다고 입주기업 저간의 사정을 말했다.

“지금 상황은 남북평화의 안전핀을 뽑아버린 격입니다. 우리가 개성공단에서 한 일은 단순히 경제적인 부문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엔 근로의욕도 없고 남쪽 사람들에게 적대적이었던 현지 근로자들이 지금은 더 열심히 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남쪽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민족끼리의 공감대를 통해 통일을 앞당길 수 있겠다고 그는 생각했었다. B대표는 개성공단 사업이 재개되기를 바랄 뿐이다. 물론 평화적이고 실리적인 방법이어야 한다는 조건에서다.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관련기사 ㅣ “공장 지었는데…북도 우리정부도 못 믿겠다”
• 관련기사 ㅣ 개성공단 입주기업 잠정 피해규모 ‘8152억+α’
• 관련기사 ㅣ “정부가 개성공단 자산 국유재산으로 편입해야”
• 관련기사 ㅣ 정부 “개성공단, 고용위기지역 이상으로 지원”
• 관련기사 ㅣ “지원이 아니라 보상”을 요구한 개성공단 입주기업
• 관련기사 ㅣ 개성공단 문제 해결위해 남북은 대화해야 한다
• 관련기사 ㅣ “남북이 함께 만든 제품…통일 첫걸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