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민 한국사진문화연구소 연구원, 미술평론가

당황스럽다. 사실 이런 일은 우리나라 대도시에 사는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겪게 된다. 거리의 간판은 시시때때로 바뀌고, 건물은 삽시간에 사라지며, 길은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아마추어를 포함한 많은 사진가에게 도시는 손쉬운 먹잇감이 되어 왔다. 사라지기 직전의 모습 그대로를 영원히 포획할 수 있는 사진의 능력이 발휘되기에 이만큼 적절한 소재도 없었던 것이다.

Demolition Site 11 Outside_Pigment print_120x160cm_2013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도시화나 개발주의 같은 뻔한 미사여구를 동반한 개성 없는 도시사진들이 넘쳐났다.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 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 급급한 사진들도 부지기수로 늘었다. 그리하여 이제 작가로서 도시에 대한 작업을 한다는 것은 독이 든 성배를 드는 것과 마찬가지인 일이 되었다. 수많은 도시 사진들 가운데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데 성공하기란 무척 어렵게 되고 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지현은 꾸준히 도시에 대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해 왔다. 우선, 분당 신도시 아파트 건설 현장과 그곳에 남겨진 사물들에 대한 작업이었던 ‘Construction Site’와 ‘Construction Site Dreg’ 연작은 도시에 대한 그의 관심이 투영된 초기 작업들이었다.

건설 현장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에서 재현한 이 작업들은 관객들에게 특정한 태도와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도시 사진들과 다른 태도를 보였다. 공동체적 장소의 소멸 위기와 집을 경제적 가치로만 규정하는 오늘날의 현실을 반영하고자 했다는 작가의 의도가 이런 재현 방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사진에서 드러나는 공간 구성의 조형성과 본래의 용도에서 벗어나 예술적 오브제처럼 재현된 건축 폐기물의 모습은 현실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태도를 곧바로 알아차리기 어렵게 한 측면도 있었다.

Demolition Site 03 Inside & Outside _Pigment print_120x160cm_2013

도시 사진의 새로운 가능성 열어

기존 도시 사진이 지니고 있었던 맹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시 사진의 가능성을 연 것은 ‘Demolition Site’에서였다. 사실 이 작업의 제목처럼 철거 중인 장면을 기록한 사진은 작업 당시에도 이미 차고 넘쳤다. 그렇지만 정지현은 명민하게 이에 대처했다. 그는 우선 철거가 예정된 건물을 조사하고, 늦은 밤 그 건물의 한 공간 전체를 빨간색으로 칠한 뒤 그 방을 촬영했다. 그리고 그는 그 건물 전체를 촬영하기 좋은 장소에 진을 치고 그것이 해체되는 순간까지 며칠이고 기다렸다가 빨갛게 칠했던 공간이 외부로 노출되는 순간 사진을 촬영했다. 다시 말해 이렇게 만든 두 장의 사진을 하나의 작품으로 구성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얼핏 단순한 듯 보이지만 이러한 형식적 전략은 폐허를 기록하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뿐 아니라, 끊임없이 파괴되고 생성되는 도시 공간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있게 한다. 붉은 방이 촬영된 사진을 본 관객은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재현한 사진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그 방을 찾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관객은 폐허의 현장을 멀리서 ‘관망’하지 않고 세세히 ‘탐색’하게 된다.

Demolition Site 06 Inside & Outside_Pigment print_120x160cm_2013

정지현의 형식적 전략은 곧 도시를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도시의 변화에 매우 둔감하다. ‘빨리빨리’로 대변되는 속도의 정치에 파묻혀 생성과 소멸의 순간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겨를이 없어서이다. 이런 현실에서 빨간 방을 찾는 과정은 우리 주변에서 무엇이 사라지고 있고, 왜 그래야만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성찰의 시간과 다름없다. 그리고 이는 도시 공간이 지니는 삶의 터전으로서의 가치와 자본의 증식 도구로서의 가치가 공존하지 못하는 현실을 깨닫도록 한다.

이처럼 정지현의 도시 사진은 사라지는 것들에 연민의 시선을 던지지 않는다. 사라지기 때문에 더는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는 이러한 무책임한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일에 별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의 관심은 처참히 부서져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빨간 방의 운명이 단지 타인의 것이기만 한 것이 아님을 말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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