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될 경우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제조물책임법, 형법 등 여러 법률을 손질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홍익대학교 이중기 로봇윤리와 법제연구센터 소장(법과대학 학장)은 7일 국토교통부가 주최한 자율주행차 관련 세미나에서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되면 운전의 개념이 바뀐다. 사법, 형법, 행정법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부터 개별 관련 법규의 개정 또는 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제조물책임법은 긴급히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이 소장은 “현행법 해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도 했다. 

현행법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할 경우 책임 소재에 따라 적용법이 달라진다. 운전자에게 과실이 있는 경우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에 따라 운전자가 책임을 지며, 자동차 결함으로 인한 경우 제조사가 제조물책임법에 따라 책임을 진다. 이 소장에 따르면 현재 교통사고의 90%는 운행자 운행과실로 발생한다.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되면 운전자의 역할은 사실상 사라진다. 완전 자율주행 단계에서는 운전자가 잠든 상태에서도 자동차는 갈 수 있다. 그러나 현행법으로는 자율주행차 제조사에 교통사고의 책임을 묻기 어렵다. 제조물책임법에서 제조물은 ‘동산(動産)’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통사고 책임이 있는 자율주행차의 소프트웨어는 제조물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이 소장의 설명이다.

이 소장은 “자동차손해보험의 역할이 감소하고, 제조물책임보험의 필요성이 커질 것”이라며 “현재 자동차 운전자에게 책임보험을 강제하듯 제조사에 제조물책임보험을 강제할 필요가 있다는 논의가 진행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자율주행차가 교통사고를 냈을 경우 현행 형법과도 충돌할 수 있다. 형법 268조에 따르면 과실로 인해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한 경우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에 따라 교통사고도 적용 대상이다. 이 소장은 “자율주행차 운전자는 본인의 과실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에 따라 운전자로서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을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했다. 

자율주행차 알고리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국교통연구원 김규옥 연구위원은 “자동차 운행 중 딜레마 상황이 발생하면 운전자는 본능적으로 선택을 한다.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는 이성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면서 “자율주행차는 알고리즘을 통해 이를 대비할 수 있다. 사회적 합의를 거쳐 최적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자율주행차는 운행 도중 다양한 딜레마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일례로 불가피한 상황에서 어린이와 노인 중 한 명과 충돌해야 할 경우 누구를 선택하느냐의 문제다. 기대수명이 높은 어린이를 보호하자는 의견이 있는 반면, 인생 경험이 축적된 노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1명과 10명 중 어느 쪽을 구할 것이냐도 마찬가지다. 인명을 사람 수대로 계산한다면 10명을 구하는 것이 맞지만 소수의 생명은 존엄하지 않느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이에 김 연구위원은 “로봇공학, 교통공학, 기계공학, 전자공학 등 공학 전문가와 윤리학, 철학, 법학 등 인문학 전문가의 참여로 자율주행차 윤리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편 자율주행차는 자동화 정도에 따라 5단계로 나뉜다. 김 연구위원에 따르면 현재 국내 기술수준은 부분자동화 단계인 2~3단계다. 정부는 2020년까지 3단계 자율주행차를 일부 상용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국토교통부 이승호 교통물류실장은 “자율주행차 시험 노선을 확대하고 자율주행차 실험 도시를 구축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