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부터 총선 이후가 걱정이다. 집권당인 새누리당이 한국은행을 직접 겨냥해 통화금융정책을 ‘양적 완화’ 정책으로 바꾸라고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는 새누리당의 ‘경제정책 공약 2호’이기도 하다. 양적 완화라는 게 무엇인가. 한마디로 돈을 풀자는 얘기다. 새누리당은 한국은행이 나서서 돈을 찍게 해 시중에 풀겠다는 것이다. 내용도 문제지만 절차와 형식은 더 큰 문제다.

우선 양적 완화의 진의가 무엇인지 내용을 보자. 새누리당이 내세운 양적 완화는 한국은행이 산업은행채권과 주택담보대출증권을 인수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산업은행이 발행한 채권을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 사라는 얘기다. 그러면 산업은행은 그 현금으로 기업구조조정 자금에 사용한다는 것이다. 구조조정, 즉 부실기업에 투입될 채권을 한국은행이 아무 보증 없이 살 리가 없다. 결국 정부의 보증이 필요한데, 이는 온전히 우리 정부의 부담이 되며, 종국에는 국가부채로 남게된다. 국가부채는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오는게 불을 보듯 뻔하다. 지금 우리나라의 국가부채는 무려 600조원에 달한다.

더 큰 문제는 독립기관인 한국은행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벌써부터 국회 과반의석을 노리는 집권당인 새누리당이 구시대적인 ‘관치금융’을 노골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은행은 물가 안정을 목적으로 하는 독립기관이다. 법에 그렇게 명시하고 있다. 그런 한국은행에 정당이 “돈을 찍어 공급하라”고 윽박하는 꼴이다. 그렇게 해서 통화량을 늘리면 물가가 오르고, 원화가치가 떨어지고,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간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또 우리에게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쓸 돈이 있는가. 한때나마 ‘경제민주화’를 내세웠다 이내 흔적을 지워버리듯이, 한국은행마저 옛 경제기획원의 ‘남대문 출장소’ 쯤으로 여기는 집권당이 총선 이후 어떤 행보를 가져갈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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