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공간’이라는 테마로 작업을 해온 한경자 작가의 소재는 다양하다. 2000년 초반까지 자연적 소재를 실내 공간속에 옮겨 놓았던 작업들은 2000년 후반부터는 대상자체가 전체 화면을 지배하는 방식으로 변화해왔다. 대상이 되었던 자연의 형상은 대담한 구도로서 색, 질감, 구도의 삼박자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면서 작품은 한가닥 꽃이 아닌 전체로 다가온다. 작가의 특유의 조형성은 가공되지 않은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순수한 감각적 기질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유의 공간 mixed media 72.7x60.6cm(20호) 2011

“한경자는 붓으로 화면을 칠하고, 뾰족한 도구로 칠해진 화면을 긁어낸다. 두텁게 덧그린 색면의 표면에 미세 균열효과가 생기기도 한다. 이는 물감을 흩뿌리고, 선을 긋고, 붓끝으로 화면을 튕겨내는 등의 일련의 비정형의 과정과 어우러져서 즉흥성과 즉물성 그리고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는 마치 전통적인 회화에서의 기운생동을 연상시킬 만큼 내면적으로 응축된 힘이 거침없이 내뱉어진 듯한 역동성을 느끼게 하면서도, 정작 화면은 탄탄한 구성으로 인해 절제된 마감을 보여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그 자체 식물의 질감을, 꽃의 실재를 감지케 하려는 제스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한경자의 그림에서의 꽃은 자연을 대신한 것으로서, 자연을 인위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자연의 본성, 자연의 원형, 자연의 생명력이 저절로 드러나 보이도록 한 것이다. 그러니까 작가는 대상을 추상화하고 이를 암시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그 자연성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고충환 평론 중 발췌)

사유의 공간-존재(Being) mixed media 145.5x112.0cm(80호) 2013

최근 작가는 작품<사유의 공간-존재(being)>시리즈를 통해서 소통에 관한 새로운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이 시리즈는 사회라는 맥락 속에서 충족되지 못한 인간관계에 대한 직접적인 욕구를 재해석한 기호와 이미지를 통해 인간이 원초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상과 희망을 표현한 것이다.

“나의 작업은 상호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질 않아 서로 화합할 수 없고 세대 간 모든 분야에서의 이질성으로 ‘우리’라는 명제가 소멸되어 무엇에 주의를 집중하고 고민해야 할 것인가에 착안한 것이다. 예전의 나의 작업은 공기, 햇빛, 소리 등 일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촉감으로 느끼는 것을 자연의 형상으로 재해석하여 감상자에게 그 이미지를 나름의 시각 언어로 재현하는 것이었다. 유미주의 사상으로 표현하였던 작업 방식은 사람의 이중성에 대한 실망과 상실감으로 인하여 사회현상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 인간 존재에 대한 사고의 변화를 갖게 되었다. 이는 곧 작업의 전환점이 되었다.

사유의 공간 mixed media 100x65.2cm(40호) 2010

작품에서 큐브의 형태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은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욕망과 갈등, 포용 등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기 위함이다. 큐브의 반복적인 나열을 통한 ‘보이는 공간’ 또는 ‘보이지 않는 공간’은 사회 공동체 내에서 인간의 ‘존재’ 혹은 ‘부재’의 다른 표현 방식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공간’은 각 개인이 취할 수 있는 목표와 이상이 될 수 있으며 꿈을 갖지 않는 이에게는 무지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또한 유와 무의 공존을 뜻하기도 한다. 또한 공간을 연결하는 문은 현재 삶의 영위에 의해 감춰진 이상, 희망에 대한 갈망이며, 또 다른 세계의 유토피아를 찾아가는 과정의 표현이다”(한경자 작가노트 중)

왕성한 작업을 선보이며, 끊임없는 변화를 모색하는 한경자 작가는 자기 스스로의 내면의 요구에 충실하다. 타협보다는 내면의 울림에 집중하는 그녀의 작품을 한 점 한 점 마주할 때마다 작업을 하며 작가가 가졌을 긴장감과 호흡이 느껴지는 듯 하다.[정리=키스갤러리 이유미 아트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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