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에 숫자를 써놓고 그림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그런 그림이 미술시장에서 수십억을 호가한다면 의아해 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온 카와라의 뉴욕 작업실<자료=구겐하임 미술관>

날짜를 양력으로 표기한 오늘(Today) 연작 시리즈는 24시간을 기준으로 작업을 하고, 그 날 안에 완성을 못한 작품은 바로 폐기한다고 한다. 캔버스 밑작업은 리퀴텍스라는 물감으로 4번 도색을 한 후 표면을 부드럽게 문질러 마무리하는데, 비교적 간결한 밑작업이 끝나면 그 위에 그 날의 날짜를 써넣는 방식이다.

1965년 이후 공식인터뷰를 거부하고 은둔자의 생활을 하며 ‘날짜 회화’ 시리즈, 만난 사람과 간 곳을 기록한 ‘I Met’, ‘I Went’ 시리즈 등을 제작했다. 그에게 작업은 마치 캔버스 앞에서 치르는 경건한 의식과도 같다. 어릴 적 천재 소릴 들으며 독학으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온 카와라는 1960년대 중반 뉴욕에서 개념미술가들과 활동했다.

그는 자신과 흡사한 예술적 사유를 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즐겼고 광주비엔날레에도 혼자 왔다 갔다고 한다. 예술 이외의 노동을 거부했던 온 카와라는 뉴욕, 파리, 일본에 작업실 두고 일본 젊은 작가들을 후원하는데도 열심이었다. 일본의 패전 이후 여러 나라를 유목민처럼 떠돌며 세계 시민으로서의 초의식적인 작업을 보여준 그에게 세계의 미술애호가들은 흥분했고 그를 세계적인 아티스트의 반열에 올려놓고 싶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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