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한국은행이 부쩍 주목받고 있다. 정부당국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논란에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한국은행의 존재이유가 이만큼 관심받았던 적이 없는 듯하다.

논란의 첫 진원지는 정치권이다. 지난달 총선때 경제부총리 출신인 여당 선거대책위원장이 ‘한국판 양적완화’를 들고나오면서부터다. 곧이어 경제부처에 이어 대통령까지 한국은행을 지목하며 ‘양적완화’를 압박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행을 들쑤시는 ‘한국판 양적완화’란 무엇인가.

한국은행은 홈페이지 첫 화면에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중앙은행’이라고 밝히고 있다.<자료=한국은행>

◇양적완화=양적완화는 한마디로 ‘시중에 돈을 푼다’는 것이다. 돈(지폐·주화)을 발행하고 돈의 양(통화량)을 조절하며, 화폐제도의 운영에 책임을 지는 곳이 바로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와 채권을 통해 통화량을 조절한다. 이를테면 디플레이션일 때 기준금리를 내리거나 정부·공공기관·시중은행의 채권을 매입해 줌으로써 통화량을 늘게 하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한국은행이 채권을 10조원 어치 매입하면 시중에 10조원의 돈이 풀리게 됨으로써 통화량이 증가하며 금리가 하락한다. 이로 인해 기업의 투자와 가계의 소비가 늘어나 경기를 부양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즉 돈을 풀어서 경제를 활성화하는 정책을 일컬어 ‘양적완화’라고 한다. 하지만 통화량이 증가함에 따라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수 있다. 물가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한국은행은 경기순환을 면밀히 모니터링해 기준금리와 채권을 통해 균형정책을 펼친다.

◇‘한국판’ 양적완화=그런데 ‘한국판’이라고 이름이 붙으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을 앞두고 정부가 기업도산을 막기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하기 위한 명분으로 ‘한국판 양적완화’를 내세우고 있다. 한국은행이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의 채권을 인수하게끔 해, 이들 은행이 채권을 매각해 받은 돈으로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풀겠다는 게 정부의 의도다.

문제는 이들 국책은행이 조선·해운업계에 대출해 준 돈이 20조원을 웃돈다. 국책은행 입장에서는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할 수가 있다. 그래서 ‘국책은행의 자본확충’ 이야기가 나오면서 ‘한국판 양적완화’에 까지 이르게 됐다.

◇대통령의 의중=국책은행에 돈을 대줄 수 있는 방식은 크게 두가지다. 정부재정을 지원하는 방식과 한국은행이 직접 돈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전자는 재정정책, 후자는 통화정책 영역이다.

재정정책은 곧바로 정부재정을 말한다. 이는 바로 국민세금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현금을 늘리려면 국회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증세에 대한 거부감과 국회에 대한 불신 때문에 이를 회피하고 있다.

때문에 대통령이 선택한 건 통화정책이다. 이것이 이른바 ‘한국판 양적완화’인 셈이다.

◇역사적 맥락=‘한국판 양적완화’가 논란이 되는 것은 정부가 직접 통화정책에 개입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법은 정부가 통화정책에 개입하는 걸 규제하고 있다. 또 한국은행은 정부 공식기관이 아니다. 정부기관과 유사하게 무자본특수법인의 지위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과거 개발독재시절, 지독한 인플레이션을 경험한 것은 정부가 지나치게 통화정책에 개입한 탓이다. 관치금융과 정경유착이 횡행했던 당시, 정부는 한국은행을 일개 ‘재무부 남대문출장소’쯤으로 여겼다. 한국은행이 중앙은행으로서 독립성을 갖게 된 것은 1997년 IMF외환위기 이후다. 지금 한국은행이 ‘외풍’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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