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호랑이와 훈민정음 명함함<사진=예가>

‘예가’는 삼대째 손자수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공예회사다. 이 회사 하승호 대표의 외할머니는 궁궐에서 필요한 자수를 놓아 진상하는 궁수 공예인이었다고 한다. 그 외할머니의 셋째 딸이자 하 대표의 모친인 故 소춘(素椿) 김영자씨는 손자수 기술을 전수받아 ‘김영자 자수연구소’를 설립해 손자수를 연구하고, 예가의 전신인 ㈜옛날솜씨를 세운 공예인이다.

하 대표는 “어머니의 꿈은 우리 고유 궁수를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 대표에 따르면 80년대까지만 해도 손자수로 만든 병풍, 혼례용품 등은 국내에서도 극소수의 사람들만 즐길 수 있는 사치품이었다.

예가의 하승호 대표   ©중기이코노미

국내외 전시회를 통해 손자수의 유려함을 알리는데도 적극적이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자수제품의 가격을 낮춰 대중화할 수 있는 작품들도 내놨다. 자수를 넣은 부채와 손거울 등 누구나 쉽게 소지할 수 있는 작품들을 개발해 틈새시장을 열었다.

손자수 관광기념품 개발로 자수작품 대중화

하승호 대표는 유학을 다녀온 직후인 1996년 어머니의 자수사업에 본격적으로 합류했다. 그는 자수작품의 대중화라는 모친의 바람을 실현시키려 했다. 자수제품은 주로 결혼시즌에 수요가 몰리기 때문에 일년내내 안정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작품 개발이 필요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디자이너 등을 영입해 손자수가 들어간 제대로 된 한국전통 관광기념품을 개발하고자 했던 것이다.

예가의 손자수 공예관광기념품   ©중기이코노미

하 대표는 “열두폭 병풍에 들어가는 십장생을 10cm가 안되는 작은 공간에 넣기 위해 디자이너들과 고민을 거듭했다”고 한다. 그리고 손자수의 정교한 특징을 살리면서 십장생 고유문양을 작은 공간에 풀어 넣을 수 있는 디자인을 개발한다. 디자인된 이미지들은 故 김영자씨의 손을 빌어 적재적소에 자수로 넣어 표현했다.

이렇게 탄생한 자수명함함, 자수필통, 탁상함 세트 등 손자수 공예기념품들은 한국관광공예품 공모전 등 여러 대회에서 매해 수상했다. 또 공예문화진흥원의 ‘한국 대표 공예품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손자수 복주머니   ©중기이코노미

금강산 유람선과 온정각 내에 기념품 매장 입점 제안이 들어온 것도 이즈음이었다. 상대적으로 고가인 자수제품들은 기념품 매장에서 잘 팔리지 않았기 때문에 손자수 열쇠고리·거울·부채·명함집 등 다양한 공예기념품들을 개발해 판매했다. 백화점과 면세점 등에도 입점해 판매를 했으며, 해외에 있는 한국관광기념품 판매점에도 선보였다. 또 청와대·국회·관공서·대기업 등에 귀빈선물용 상품을 납품했다.

협동조합 ‘공예로 만난 사람들’ 설립

1997년 ‘가나아트샵’ 창업멤버로 처음 인사동에 진출했던 하 대표는 이후 ‘쌈지길’로 매장을 옮겨 사업을 하며 높은 임대비용에 큰 부담을 느꼈다.

서울 북촌에 위치한 협동조합 ‘공예로 만난 사람들’ 공동판매장   ©중기이코노미

그러던 중 지난 2013년 공예를 하는 사업자들과 협동조합 ‘공예로 만난 사람들’을 설립했다. 협동조합을 통해 공동 브랜드인 ‘크레프트 로담’을 만들고, 북촌에 공동판매숍을 열어 운영중이다.

하 대표는 “공예인들이 5000만원씩 투자해 만든 협동조합이 이제 3년차”라며 “비용을 줄이고 매출이 적더라도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공예인들의 협동조합이라는 좋은 예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다른 공예인들도 뭉쳐 조합을 만들게 될 것이고, 조합들이 연합하는 더 큰 규모의 조합으로 성장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뒷면에 손자수를 넣은 손거울<사진=예가>

우리 전통공예품들은 최근 베트남, 중국 등에서 들여오는 값싼 제품들 때문에 고전하고 있다. 하지만 하 대표는 “제대로 된 손기술로 만든 공예품들은 가격이 비싸더라도 수요가 꾸준하다”고 했다. 또 누군가는 한국 전통문화의 맥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확신했다. 때문에 그는 다른 곳에서 흉내 낼 수 없는 예가만의 품질을 고수한다. 자수에 사용되는 실도 자체적으로 개발한 색감으로 염색해 자수공예가에게 제공하고 있다.

“옛날의 것을 똑같이 재현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통문양을 현대적으로 풀어서 현대에 맞는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하 대표는 요즘 자수문양을 디지털 프린팅 해 문화상품을 만들고 있다. 또 민화작품을 상품화하는 일도 추진하고 있다.

하 대표는 “훌륭한 공예품을 만드는 것은 공예인 각자의 몫”이라며 “공예인들이 공예품을 판매할 수 있는 장이 더 많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했다. 공예인들이 작품을 판매할 수 있는 판로는 인사동이나 관광지 등으로 한정돼 있고, 이곳들은 임차비용 등이 비싸 입점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 대표는 공예품을 선보일 수 있는 장이 많이 있고, 판매가 활성화 되면 주변 상권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