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보유한 우리은행 지분을 복수의 투자자에게 분산매각하는 방안이 나왔다. 이 과정에서 우리은행 민영화 3대원칙 중 조기 민영화에 방점을 둬야 한다는 이유도 제시됐다.  

26일 한국금융연구원이 개최한 ‘바람직한 우리은행 민영화방안’ 정책토론회에서 김우진 금융산업연구실장은 “우리은행 민영화 3대원칙은 서로 상충하는 면이 있다”며 “조기민영화에 방점을 두고 우리은행 민영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은행 민영화의 3대원칙은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 ▲조기 민영화 ▲금융산업 발전을 말한다.

공적자금위원회 박상용 위원장은 이날 정책토론회에 앞서 인사말을 통해 “민영화 3대원칙 간 우선순위를 어떻게 둘 것인가가 이슈”라며 “모두 충족해야 한다면 그런 민영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6일 한국금융연구원은 ‘바람직한 우리은행 민영화방안’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중기이코노미

김우진 실장은 “일괄매각 방식과 분산매각 방식의 장점을 결합하고 단점을 최소화하는 새로운 매각방식이 필요하다”며 ‘희망수량 경쟁입찰’ 방식을 소개했다.  

‘희망수량경쟁입찰’은 국가계약법 시행령에 따른 입찰방식 중 하나다. 다량의 물품을 매각할 경우 입찰참가자로부터 희망가격 및 수량을 접수하고, 예정가격 이상의 입찰자 중 최고가격으로 입찰한 자 순으로 매각수량에 도달할 때까지의 입찰자를 낙찰자로 결정하는 방식이다.

희망수량경쟁입찰 방식의 장점에 대해서는 “민영화 원칙을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전략적 투자자, 재무적 투자자 등 이해관계가 다른 여러 투자자들을 동시에 수용해 한꺼번에 입찰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자위와 금융연구원의 조기민영화 방안 결정에 따라 우리은행 민영화의 속도가 붙을 지는 아직 확정할 수 없다. 우리은행 민영화 3대원칙 중 일부를 수정하는 것에 대한 합의가 국민과 이해당사자 간에 어떻게 형성될 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민영화 3대원칙은 탄생 배경 자체가 정치적” 

 

우리은행 민영화 3대원칙은 금융지주회사 부칙에 명시된 내용이다. 우리은행 매각은 결국 공적자금 회수 차원에서 실시되는 것이므로 회수 규모가 중요한 고려대상이다. 또 자회사 분리매각을 통해 형성된 민영화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우리은행 매각방안이 조기에 실현될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은행과 같은 거대은행의 소유구조가 변하는 상황에서 금융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검증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김 실장은 우리은행 민영화 3대원칙이 “금융지주회사법의 기간을 연장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며 “탄생 배경 자체가 정치적”이라고 주장했다. 

금융지주회사법 부칙상 우리금융의 민영화는 2007년에 마무리됐어야 했다. 그러나 민영화가 지체되면서 정부 보유주식 처분시한을 폐지하는 법개정이 2008년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민영화 원칙이 부칙에 도입됐다.

김 실장은 민영화 3대원칙이 “기본적으로 상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예를 들어 PBR이 낮은 상황에서의 조기 민영화는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에 반할 수 있다. 조기민영화를 위해서는 금융산업 발전에 최적격인 인수후보가 입찰에 참여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다.

3대원칙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 김 실장은 “다른 원칙들이 크게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조기민영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와 가입가치 회복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민영화 3대원칙 중 그동안은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가 다른 원칙보다 우선시됐다는 점에서 조기민영화를 중심으로 우리은행을 민영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의미가 있다.

2001년 설립된 우리금융지주에는 12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들어갔다. 정부는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민영화를 추진해왔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중기이코노미

지금까지 우리은행 민영화는 국가계약법 상 일반경쟁입찰 방식으로 진행돼 왔다. 일반경쟁입찰은 특정 물건에 대해 2인 이상이 입찰하고 이 중 높은 가격을 제시한 자에 매각하는 방식이다.  

지난 2010년 1차 매각시도 이후 2011년과 2012년까지 모두 세 차례 시도된 우리은행 매각시도는 모두 일반경쟁입찰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2인 이상의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거듭 유찰됐다.

이에 따라 우리금융지주에 투입된 공적자금 12조8000억원 중 현재 상환된 공적자금은 5조8000억원으로 회수율이 45%에 불과한 상황이다.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한 우리은행 지분은 기관투자자에게 블록세일로 매각하면서 57%까지 감소했다. 그러나 더 이상의 블록세일은 없을 것으로 알려졌다. 김 실장 역시 “개인적 생각”이라는 전제를 달면서 더 이상의 블록세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블록세일을 통한 지분매각으로는 공적자금 회수를 충분히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포함하면 수조원에 달하는 우리은행 인수에 투자자들이 쉽게 나서지 못해왔다. 2012년에는 KB금융이 인수에 참여하기 직전까지 갔으나 이사회의 반대 등으로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공자위가 조기민영화를 우선시 하겠다고 밝힌 것은 우리은행 민영화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겼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금융연구원의 제안처럼 복수의 투자자에게 희망수량경쟁입찰 방식으로 지분을 매각하는 것 역시 성공할 것이라 확신할 수는 없다.

희망수량경쟁입찰방식은 지금까지 KT, 국민은행 민영화 과정에서 사용된 바 있다. 그러나 정부보유 지분을 전량 매각한 것은 2003년 국민은행의 사례가 유일하다. 2001년 KT의 민영화 과정에서는 정부가 매각하기로 한 KT지분 14.7% 중 1.1%만 매각됐다. 또 2010년 한국전력이 자회사인 한전KPS 지분 10%를 매각할 때는 자산운용사 3개사가 참여했으나 모두 예정가격 이하로 입찰해 유찰된 바 있다. 지분매각 자체가 실패할 수 있으며, 공적자금 회수도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단일한 대주주에게 일괄매각하는 방식이 아니라 복수의 투자자에게 분산매각할 경우 소유권이 불안정해질 수도 있다. 김 실장은 이러한 비판을 의식한 듯 “장기투자가 가능한 연기금 등 국내 기관투자가, 국내외 PEF, 글로벌 금융회사, 우리사주조합 등으로 대주주 그룹을 구성할 수 있다”고 예시했다.

또 5% 이상 등 일정수준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5년이상 등 일정기간 이상 투자의사를 밝힌 주주에게는 사외이사 후보 추천권 등을 통해 제한적으로 경영 참여를 허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우리은행의 조기매각에 동의하는 입장을 보였다. 김동원 고려대 초빙교수는 “공자위가 우물쭈물하는 동안 우리은행의 주가만 떨어졌다”며 “민영화 3대원칙은 포기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또 “지금 파는 것이 공적자금 회수를 극대화하는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 역시 “경제학에서 현재가치를 가르친다. 오늘의 100원과 내일의 100원이 다르다는 것”이라며 “지금 파는게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또 “1인 대주주를 만드는 ‘바위 구조’나 국민주 방식의 ‘모래알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경영감시가 가능한 기관투자자 중심의 ‘자갈돌 구조’를 만드는 것이 이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방안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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