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게 기업구조조정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 자체가 잘못입니다. 구조조정은 투자자들이 참여해 기업을 회생시킬 것인지, 아니면 청산할 것인지 등 자구책을 강구하는 것입니다. 정부가 개입하는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 찾아볼 수 없습니다”

박상인 교수는 “정부가 주도하는 구조조정 방안은 전형적인 관치금융”이라며 “총수일가의 책임을 묻지 않는 구조조정은 재벌 퍼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중기이코노미

◇“부실규모 아무도 몰라…‘비밀주의’ 심각”=박 교수가 말한 발전국가는 시장경제를 원칙으로 하면서도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일컫는다. 발전국가의 특징이 ▲정부의 개입 ▲정책을 형성·집행하는 관료의 중요성 등인데, 현재 박근혜 정부가 발전국가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정부가 개입해 현재 주도하는 구조조정 방안은 전형적인 관치금융이며 잘못됐다는 얘기다.

“도대체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이 부실기업에 자금을 얼마만큼 지원해 줬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금융연구원 박사들도 모르고 있을 정도입니다. 결국 아무런 책임도 지지않고 경제관료가 국민혈세를 마구잡이식으로 재벌들에게 지원해 주는 것 밖에 안됩니다”

정부가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비밀주의’로 일관하고 있다며 쓴소리를 이어간 박 교수는 특히 공적자금관리특별법(공자법)에서 규정한 ‘최소비용과 공평한 손실부담’ 원칙마저 저버렸다고 했다. 박 교수는 “기업파산이 경제에 미칠 영향이 심대할 경우에 공적자금 투입의 비용과 편익을 보고 얼마만큼 투입할 것인지를 신중히 결정해야 하는데, 부실규모·재정통계 등 무엇 하나조차 공개한 게 없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기업구조조정의 핵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 대한 금융권의 익스포저(위험노출액)는 대략 1조7700억원이며, 이 가운데 국책은행이 70% 가량 떠안고 있다. 대우조선에 대한 익스포저는 무려 21조7000억원이며, 국책은행 비중은 84% 가량인 것으로 추산된다.

“막대한 자금이 주로 재벌들에게 집중 지원됐습니다. 총수일가나 경영자는 작은 희생도 부담하지 않으면서 정부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죠. 퍼주기식으로만 일관하는 국책은행의 도덕적 해이라는 비난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박 교수는 구조조정은 투자자와 경영진이 자신의 지분을 걸고 기업 회생방안을 찾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과거 덴마크는 조선업 강국이었습니다. 공급과잉으로 도태됐지만 설계제작과 중요부품 만큼은 세계 최고입니다. 덴마크는 중후장대형 조선업을 접는 대신 고부가가치 종목과 부품소재 중소·중견기업을 육성하는 쪽으로 전환했습니다”

경실련이 지난 3일 주최한 ‘기업 구조조정, 올바른 방안은 무엇인가’ 긴급 토론회에 참석한 박상인 교수.   ©중기이코노미

◇“구조조정은 지역경제 사활이 걸린 문제”=구조조정 대상으로 지목된 조선·해운업종의 경우 수천명의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해고됐다. 인근 상권은 돈이 안 돈다고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피해가 지역경제까지 미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쌍용차 문제가 발생했을 당시 평택 지역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노키아가 몰락할 때, 노키아 주공장이 있던 핀란드 남서부지역의 작은 도시 ‘살로’의 자치단체장은 중앙정부에 실업대책과 지역경제안정화대책을 집중적으로 제기했습니다”

지방자치단체가 구조조정과 관련해 제3자의 입장으로 비켜 서있지 말고,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국민의 대의기구인 국회가 중심이 돼, 20대 국회에서 구조조정 문제를 집중 제기해야 합니다. 경제구조조정특위를 구성해 부실기업의 실태와 대책을 따져물을 수 있는 청문회가 열려야 하는 사안이죠. 대규모 조선소에서 수천명의 하청노동자들이 해고의 칼바람을 맞고 있는데 그에 반해 ‘조선업 르네상스’로 막대한 이윤을 챙겨온 지배주주에 대한 책임론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따라서 부실 대기업을 회생시키기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사실상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과 다를바 없기 때문에 공적자금을 실업대책과 지역경제안정화에 사용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박 교수는 특히 대기업 조선소라도 회생가능성이 없으면, 기업청산과 채무변제를 한 후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는 게 시장경제원리에 부합하는 방안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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