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습적 야근, 비효율적 회의·보고 등 후진적인 기업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일 대한상공회의소는 ‘잘못된 기업문화로 한국기업의 조직 건강도에 적신호가 켜졌다’며 기업문화 컨퍼런스도 열었다. 현장에서는 ‘기업문화를 하루아침에 바꾸는 게 쉽지 않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상습적 야근 가장 큰 문제”=대한상의와 맥킨지는 국내 대기업·중견기업 100개사의 임직원 4만명을 대상으로 지난해부터 9개월간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직원들이 가장 문제로 꼽은 항목은 불필요한 야근이었다. 전체 응답자의 70%가 평소 야근이 많아 퇴근시간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맥킨지 최원식 서울사무소 대표는 야근의 원인을 파헤쳐야 해결책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 대표는 이날 컨퍼런스에서 “야근 문화를 바꾸려면 일하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퇴근시간에 강제소등을 해도 일 자체가 줄지 않는다면 결국 회사 밖에서 업무를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야근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할 일이 남아서’와 ‘일이 없는데도 남아야 해서’다. 할 일이 남아있는 이유를 분석해 보니 ▲인력부족 ▲특정 직원에 업무 집중 ▲일이 몰려도 조정 불가 ▲퇴근 직전 회의 소집이나 업무 지시 ▲업무 중 비효율적인 회의·보고 ▲상사가 회의에서 나올 때까지 전원대기 ▲야근 일상화로 업무시간 중 나태함 등의 원인이 파악됐다.

일이 없는데도 상사나 동료 눈치 때문에 이어지는 야근도 문제다. 조사 결과 일부 직원들은 할 일을 마쳤는데도 야근이 성실의 척도라도 믿는 상사와 동료들의 시선을 의식해 야근을 한다고 했다. 직원에 대한 평가가 정성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눈치보기식 야근이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신입과 직급 같으니 괴리감…동기부여 고민”=국내 기업들도 변화 필요성은 느끼나 수 십년 간 쌓아온 기업문화를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SK텔레콤은 몇 년 전부터 팀장급 이하는 모두 ‘매니저’로 직급을 통일했다. 기업문화 혁신을 위한 호칭 파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미묘한 괴리감도 있다.

SK텔레콤 김태헌 기업문화팀장은 “고참들은 상실감을 토로한다. 15년차인 본인도 매니저, 신입사원도 매니저라는 거다. 조직생활은 승진에 따른 신분 상승이라는 동기부여가 있는데 15~20년을 근무해도 매니저니 동기 저하의 문제가 나타났다. 이런 문제에 대한 보완책도 고민중”이라고 했다. 

김 팀장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모를까 변화는 정말 어렵다. 기존 구성원들의 저항감이 크다. 맹목적으로 과거를 부정하기 보다는 현재의 강점을 살리면서 새로운 방식을 적용하려 하고 있다”며 “기업 문화는 눈에 보이지 않아 변화를 확인하기에도 어려움이 많다. 화려함보다는 작은 것이라도 꾸준하고 집요하게 바뀔 때까지 실행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 문화 혁신 주체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최원식 대표는 중간관리자의 역할을 강조했다. 일반직원과 경영진간의 인식 차가 너무 크니 중간관리자가 허리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업 문화와, 리더십, 책임소재, 조율 및 통제, 동기부여, 외부지향성 등의 기업문화 항목에 대한 견해를 조사해보니 직원들은 대부분의 항목에서 ‘최하’라고 답한 반면 경영진은 역량을 제외한 대부분의 항목에서 ‘최상’이라고 답했다. 

최 대표는 “중간관리자가 주도해야 한다. 중간관리자가 위로는 권위적 리더십에 대한 중재자 역할을 하고 아래로는 전문성을 갖추되 집단지성의 힘을 활용할 줄 아는 리더가 돼야 한다. 과거 모델을 과감히 버리고 변화를 주도할 사람은 중간세대”라고 했다.

상명하복 분위기에선 결국 중간관리자도 직원일 뿐인데 경영진에 쓴 소리를 할 수 있겠냐는 반론도 있다. 우수 기업문화 사례로 소개된 유한킴벌리에서는 CEO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유한킴벌리 최호연 HR부문장은 “초기에 임원들의 반발이 컸으나 CEO가 강하게 밀어붙이니 임원들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면서 “기업문화 변화에서는 리더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