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교수(차기 중소기업학회장)는 “한국경제가 개도국의 성장모델이 됐지만, 지금은 대·중소기업간 불균형을 초래하는 등 대기업 주도 경제정책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지적했다.   ©중기이코노미

“한국경제가 정말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동안 한국은 개발도상국의 성장모델이었는데, 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5000달러 수준에서 ‘선진국병’에 걸렸으니. 게다가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극단의 시대’에 살고 있는 한국사회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시계가 ‘상실의 시대’에 놓여 있는 것만 같습니다”

차가운 로고스(logos·이성)만 있을 것만 같던 경제학자의 입에서 ‘상실의 시대’를 말한다. 그의 말마따나 사실상 ‘제로 성장’과 다름없는 2%대 경제성장률에다, 가계부채는 1200조원을 훌쩍 넘겼다. 올해를 정점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며, 기대수명이 늘어 2026년께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한국이다. 경제학자에게서 ‘희망’을 엿보자는 의도는 애당초 어려운 전제였는지 모른다.

“대기업 중심 경제정책, 하청구조 낳은 원인”

중기이코노미가 만난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 교수(차기 한국중소기업학회장)는 한국 경제와 사회가 ‘극단의 시대’에 놓여있다고 평가했다.

“한국경제가 개발도상국가의 모델이 될 정도로 성장했지만, 사실상 대기업 중심의 정책 결과입니다. 개발독재시대 대기업 주도의 경제는 결국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하청구조를 낳게 한 구조적 원인이 됐습니다”

이정희 교수는 중소기업이 대기업 의존증에서 탈피할 것을 당부했다.   ©중기이코노미

“경제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대·중소기업간 임금격차가 더 벌어지게 됐고,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인력 감축이 불가피합니다. 가계는 미래의 불안감 때문에 소비를 하지 않고 되레 ‘저축의 역설’ 현상이 생겨나는 등 한국경제의 성장동력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자칫 ‘중장기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다. 그러면서 한국경제가 ‘새로운 모멘텀’을 찾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현 정부는 아직도 1970~80년대 ‘재벌 개발’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도 “중소기업도 대기업 의존에서 벗어날 체질을 갖춰야 한다”고 당부했다.

“中企, 기업가정신으로 ‘글로벌 거래’ 전환을”

이 교수는 중소기업 중심 국가인 대만의 사례를 꺼내 들었다.

“대만은 부품소재가 강한 나라입니다. 특히 대만은 자국 기업과 거래관계를 맺지 않고, 글로벌 기업과 협력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강소기업 국가로 발돋움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거래관계를 맺고 있어 ‘갑질 구조’가 형성됐습니다”

이정희 교수는 ‘기업가정신’을 특별히 강조했다. 중소기업이 능력을 발휘할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현재 이 교수는 중소기업청 의무고발요청권 심의위원,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거래정책자문위원, 동반성장위원회 위원, 대중소기업협력재단 위탁분쟁조정협의회 위원 등 정부 자문교수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재벌이 불공정거래를 하거나 갑질 횡포를 하면 일벌백계해야 하는게 원칙입니다. 그러나 대기업을 징벌하면 협력업체·하청업체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도 여러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부패한 곳에 메스를 들이대 환부를 도려내야 하지만 중소기업에 미치는 파장 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신중론이다.

한편 이 교수는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에서 ‘응용경제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제이론을 자원·환경·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는 경제학이다. 차기 중소기업학회장으로 선임된 이 교수는 내년 4월 취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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