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의 경쟁력은 노동력이었다. 저렴한 노동력으로 생산된 제품은 싼 가격으로 세계시장을 휩쓸었다. 그러나 최근 중국 제품들을 보면 노동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샤오미, 화웨이와 같은 기업들은 기술력을 갖춘 제품을 세계시장에 선보였다. 서울대학교 이정동 교수는 중국이 달라진 이유를 ‘개념설계’ 능력에서 찾았다. 개념설계란 백지에 그림을 그리듯 제품과 서비스가 존재하지 않을 때 새로운 것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개최한 ‘기업문화와 기업경쟁력 컨퍼런스’에서 서울대 이정동 교수(공과대학)는 “저성장 기조를 벗어나기 위해 한국기업들이 갖춰야 할 핵심역량이 바로 개념설계 능력”이라고 단언했다.

이 교수는 개념설계 능력이 뛰어난 사례로 나이키를 들었다. 이 교수는 “나이키가 신제품을 시장에 출시했을 때 준비는 과거에서 시작했지만 출시된 시점에 ‘앞으론 이런 신발을 신어야 한다’는 미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런 메시지를 담은 제품을 그리는 능력이 개념설계 능력”이라고 말했다.

한국기업들은 실행역량이 뛰어나다. 실행역량은 개념설계를 실천하는 능력이다. 설계도를 보고서 아파트를 짓는 능력이다. 실행역량이 뛰어나다 보니 예상 기간보다 빠르게 완성한다. 그러나 정작 설계도를 그릴 능력은 없다. 주어진 설계도를 따라가니 미래적 메시지를 제품에 담지 못한다. 이 교수는 “한국기업들이 설계도를 그릴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늘 한발 뒤쳐질 수밖에 없다. 설계도가 나왔을 때는 그것은 이미 과거의 것이 된다”고 말했다.

한국기업들은 왜 개념설계 능력이 부족할까. 이 교수는 실패를 두려워하고 도전을 기피하는 조직문화가 원인이라 진단했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성과를 내야 하는 압박감 속에서 실패에 대한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다른 사람에게서 배우는 것이 아닌, 실패의 경험에서 개념설계 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전제하고 “한국기업들 또는 기업의 구성원들이 실패를 두려워해 새로운 시도를 기피하다보니 ‘축적’을 통한 ‘공공재’를 쌓지 못해 개념설계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기업 실패사례는 ‘창조적 축적’이며 ‘사회적 공공재’라는 것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빠른 가시적 성과를 원한다. 이 교수는 “성과에 대한 조급함이 개념설계에서 이어지는 스케일업(Scale up) 능력에도 방해가 된다”고 말했다. 스케일업은 작은 아이디어들을 모아 크게 키우는 능력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가 구글이다. 구글이 제공하는 많은 서비스들이 각자 떨어져 있었다면 어땠을까. 성격이 다른 아이디어를 모아 그 가치를 더욱 키우는 것이 스케일업이다. 스케일업이 성과를 보이기 위해선 연동성이 갖춰져야 하고 여기에 시간이 필요하다. 이 교수는 한국기업은 빠른 시간 내 성과가 보이지 않으면 실패로 간주해 조급해하며 기다리지 못한다고 말한다.

실패를 경험하기 위해선 도전이 우선돼야 한다. 기업 내 소통 부재는 도전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이 교수는 “개념설계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다양성과 능력을 존중하고, 할 말은 하는 ‘쐐기형인재’를 육성하는 기업조직문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국의 기업조직문화에서 ‘쐐기형인재’는 조직내에서 생존조차 자신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맥킨지 조사결과에 따르면, 부하직원이 상사에게 질문하기 어려운 이유로 절반 정도가 ‘감정적 대응이 두려워서’다. 또 회의가 비생산적이라 여기는 이유로 25%가 ‘리더의 일방적 소통’을 들었다. 할말을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질문이나 의견제시 조차도 용기가 필요하단 얘기다. 조사결과가 다소 과장된 듯하나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아래’와 ‘위’간 소통부재가 나타나는 이유는 세대간 상대방을 바라보는 인식차이이고, 이것은 또 다시 보다 심각한 소통부재로 귀결된다. 맥킨지 조사결과에 따르면 나이가 많은 임원들은 “우리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의지를 가지면 될 텐데 해보지도 않고 걱정한다”고 ‘아래’를 질타한다. 반면 젊은 직장인들은 “리더들이 자신의 성공경험에 갇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일단 시키는 대로 해’라고 지시하는 것을 보면 정말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위’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

조직내 상하 또는 좌우간 소통은 때론 비용을 초래한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조정과 설득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통을 비용으로 치부하지 않고 다양한 방식의 소통을 통해 구성원의 조직충성도를 끌어낸 구글의 사례는 상명하복의 한국의 기업문화와 대비된다. 

한국 시간으로 금요일 아침 전세계 구글 직원들은 ‘tgif(Thanks Google It's Friday)’ 행사를 갖는다. 미국 본사와 화상으로 연결해 전 직원들이 구글의 모든 것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시간이다. 구글 내 가장 중요한 행사로 여겨진다.

구글은 일반직원들에게 의사결정권을 준 것을 성장동력 중 하나로 꼽았다. 직원들이 임원이 아니라도 경영자 마인드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 구글 자체 평가다.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의견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구글은 설사 효율성이 떨어지더라도 의견들을 모두 듣기로 했다.

구글은 전체 직원들의 얘기를 수렴하고 이를 통해 변화를 추구하지만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전통적인 회사가 아니다. 그리고 전통적인 회사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는 모토만큼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전통은 ‘과거’로 바꿔 말할 수 있다. 한국기업 임원의 ‘우리 때’와 ‘성공경험’을 내세운 소통과는 격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