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학연료를 생산하는 A사는 지난 2010년 생산용량·품질규격 등 대기업 B사의 제안을 받아 독자기술을 개발해 월 1000톤 규모의 생산설비를 구축했다. 그런데 B사는 설비의 건설단계부터 여러 이유를 들어 설비자료를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A사는 우연히 임치제도를 알게 돼 곧바로 기술임치를 신청했다. 이를 통해 A사는 기술공개 요구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었다.

#. 휴대폰 안테나 권선장치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C사는 대기업 D사의 요청에 따라 단독으로 해당 제품을 개발해 납품하던 중, D사가 같은 업계의 다른 협력업체 E사로 하여금 동일제품을 개발하도록 지시한 사실을 포착했다. 이에 C사는 이 기술이 이미 임치한 기술임을 알리는 내용증명을 D사와 E사에 보냈다. C사는 대기업 D사와의 조정을 통해 E사와 거래를 포기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외부와 차단된 독립공간에 임치한 기술자료를 보관하고 있다.<사진=동반성장위원회>

이러한 기술탈취는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의욕을 꺾고, 이제 막 신기술을 개발해 성장하려는 기회를 차단하는 행위다.

‘기술자료 임치제도’는 중소기업의 독자기술을 보호할 수 있는 방패막 역할을 하고 있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은 중소기업의 기술보호를 위해 기술자료 임치제도를 규정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위탁·수탁 계약관계에서 정당한 이유없이 기술자료를 제공할 수 없도록 정한 것이다.

21일 동반성장위원회 기술자료 임치제도 이용실적에 따르면, 시행 첫 해인 2008년 26건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는 누적 2만5185건을 기록했다. 올 5월말 현재 기술임치한 총 건수는 2만7704건이다.

이와 관련 동반위 이면현 기술임치관리팀장은 “이는 중소기업들이 기술유출에 대해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며 “동반위가 운영하는 기술임치제도는 특허출원 기술, 공개를 꺼려해 특허를 등록하지 않은 기술, 영업비밀 등을 보호하고 있다”고 중기이코노미에 설명했다.

기술자료 임치 현황

<자료=동반성장위원회>

그러나 기술자료 임치제도 활용 등 중소기업의 기술보호 자구노력에 비해 정부 차원의 제도적 지원이 제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에대해 기술보호 전문가인 손보인 변호사(법무법인 위민)는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최근 중국도 상표·디자인·특허 등에 까지 기술편취행위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다”며 “우리 정부도 지난 4월 발표한 ‘중소기업 기술보호 종합대책’에 대한 구체적인 추진계획을 빠른 시일 내에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 4월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국가지식재산위원회를 열어 ‘중소기업 기술보호 종합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종합대책에 따르면 부정거래 방지 및 영업비밀보호법을 개정해 피해액의 최대 3배까지 물어주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고,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벌금은 현행 5000만원에서 5억원(국내 유출의 경우)으로 10배 인상한다. 이외 공정거래위원회의 현장 직권조사, 기술유출 관련 재판을 신속히 진행하기 위한 집중심리제 도입 등도 대책에 포함됐다.

하지만 발표이후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종합대책 추진 일정과 관련 중소기업청 한 관계자는 중기이코노미 기자와의 통화에서 “연말까지는 입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며 “현재 기술침해 관련 조사방법 등 입법안을 다듬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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