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동전 없는 사회’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금을 내면 거스름돈은 동전이 아닌 가상계좌에 입금해주는 방식이 유력하다. 낭비되는 주화 발행 금액과 관리 비용을 절감하는 한편, 궁극적으로 ‘현금  없는 사회’ 단계까지 가면 지하경제를 양성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그러나 개인정보보호, 금융 소외계층 발생 등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동전 발행액은 1032억원이었다. 주화는 지폐에 비해 유통과 회수율이 낮아 신규 발행에 많은 비용이 든다. 동전이 생기면 다시 쓰기보다는 저금통에 넣거나 집에 방치해둔다는 의미다. 10원짜리 동전을 만드는데 20원이 든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은이 2020년까지 동전 없는 사회를 추진하겠다고 나선 것도 그래서다. 궁극적인 목표는 ‘현금 없는 사회’다.

유럽 일부 국가에선 이미 정책을 추진 중이다. 유럽중앙은행은 지난 5월 500유로화(약 66만원) 발행을 중단하겠다고 결정했다. 고액권이 범죄, 테러 등 불법적인 용도로 활용된다는 판단에서다. 프랑스는 지난해 9월부터 1000유로가 넘는 물건은 현금으로 살 수 없게 규제하고 있다. 덴마크와 스웨덴에서는 대중교통 요금을 현금으로 받지 않는다. 

이같은 정책은 검은 돈을 양성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한은 김정혁 전자금융팀장은 24일 조폐공사 세미나에서 “이들 국가는 국민 편의를 위해 현금 없는 사회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다. 범죄를 예방하고 지하경제를 차단해 세수를 늘리기 위함”이라고 했다.

한은은 하반기부터 동전 없는 사회를 위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1단계로 오는 7월까지는 편의점, 마트, 약국, 커피숍에서 동전 대신 거스름돈을 적립해주는 시범테스트를 실시한다. 전자화에 따른 보안취약점도 진단한다. 2단계에선 제휴기관과의 협력에 나선다. 김정혁 팀장은 “거스름돈 적립 시스템 개발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 시스템 도입 후 운영에 따른 수수료는 누가 부담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현금을 써도 거스름돈을 가상계좌로 지급한다는 것은 개인이 어디서 얼마를 썼는지 낱낱이 흔적이 남는다는 의미다. 이른바 ‘빅브라더’에 대한 걱정이다. 또 가상계좌 등을 원활하게 활용하지 못하는 노년층은 정책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조폐공사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조폐공사 미래전략실 김의석 차장은 “화폐 사용을 단순히 기술 발달, 투명한 조세정책, 범죄율 감소로만 놓고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소액화폐를 주로 사용하는 서민과 경제적 약자도 고려해야 한다. 충분한 의견 수렴을 통한 정책 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