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들어 유행처럼 번진 ‘님’ 문화에 삼성전자도 뒤늦게 동참했다. 임직원간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위해 서로의 호칭을 ‘○○○님’으로 쓰기로 정한 것이다. 그러나 팀장급 이상은 직책을 유지해,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27일 오후 삼성전자가 발표한 인사제도 개편방안에 따르면, 내년 3월부터 이 회사에서는 임직원 공통 호칭으로 ‘○○○님’을 쓴다. 단, 부서 내 업무 성격에 따라 님, 프로, 선배님, 후배님, 영어이름 등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삼성전자는 설명했다. 일례로 삼성 계열사인 제일기획에서는 직원 간 호칭을 ‘프로’로 통일하고 있다.

그러나 예외사항이 많아 호칭파괴로 인한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있다. 삼성전자가 팀장급 이상은 직책 호칭을 유지하기로 정해서다. 팀장, 그룹장, 파트장, 임원은 지금까지와 같이 직책으로 부른다.

재계 1위 삼성전자의 호칭파괴 실험이 다른 대기업과 중견기업에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한 중견기업 사원은 “회사 내 의사소통에서 호칭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일단 ‘부장님’ 하면 중압감이 들어 내 의견을 말하기 어렵다. 우리 회사에도 ‘님’ 문화를 도입하면 좋겠다”면서도 “호칭파괴를 할 거면 임원까지 다 바꿔야 하는데 삼성전자는 임원 반발 때문에 직책을 유지하기로 한 것 같다. 기왕 할 거라면 사원도 이재용 부회장에게 ‘이재용님’이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한국 기업에 ‘님’ 문화가 도입된 것은 2000년 이후다. CJ, 유한킴벌리, 아모레퍼시픽 등이 ‘님’ 문화를 도입했고 SK텔레콤은 ‘매니저’, 제일기획은 ‘프로’ 등으로 호칭을 단일화했다. 자연스럽게 직장상사의 이름을 부르는 미국처럼 한국도 상하관계를 부수고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하자는 취지에서다. 카카오 등 일부 스타트업에서는 영어이름 호칭을 쓴다. 임지훈 대표의 영어이름은 지미(Jimmy)로, 신입사원도 임 대표를 ‘지미’라고 부른다. 

그러나 호칭을 파괴한다고 수평적인 문화가 정착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CJ E&M의 한 직원은 27일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부하직원은 상사를 ‘선배’라 부르고, 상사는 부하직원에게 ‘님’ 없이 이름만 부른다. E&M은 방송계 특유의 문화가 있어 엄격한 편이다. 선배에게 다나까(엄격한 군대식 높임말)체를 쓴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님 문화로 인해) 부서 내에서는 수평적이라는 느낌을 못 받지만 다른 부서와 일할 때는 편리한 점이 있다”며 “같은 CJ라도 계열사에 따라 다르다. 정통 CJ 계열사인 CJ제일제당은 ‘님’ 호칭을 잘 지킨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업종이나 기업 분위기에 따라 ‘님’이 어울리는 곳이 있고 그렇지 않은 곳이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상하서열 분위기에서 재빠른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집단에선 호칭제가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제과회사 오리온은 2002년에 ‘님’ 문화를 도입했다가 2009년 직책제로 돌아왔다. 해태제과도 마찬가지다. 조직문화는 위계서열식인데 호칭만 ‘○○○’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오히려 어색했다는 것이다. 

호칭파괴가 시니어급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트린다는 지적도 있다. SK텔레콤은 2006년에 주요 직책을 제외한 직원의 직급을 ‘매니저’로 통일했다. 기업문화 혁신을 위한 대책이었으나 내부에선 볼멘소리가 나왔다. 

SK텔레콤 김태헌 기업문화팀장은 “고참들은 상실감을 토로한다. 15년차인 본인도 매니저, 신입사원도 매니저라는 거다. 조직생활은 승진에 따른 신분 상승이라는 동기부여가 있는데 15~20년을 근무해도 매니저니 동기 저하의 문제가 나타났다. 이런 문제에 대한 보완책도 고민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