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고 순수한 유년시절로의 초대 ‘러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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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고 순수한 유년시절로의 초대 ‘러버덕’ 마음을 위로하는 힘…플로렌타인 호프만의 공공미술 ‘러버덕 프로젝트’

기사입력2016-07-13 18:46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평론가, 종합인문주의 정치비평지 ‘말과활’ 편집위원

모든 어른은 자기 안에 어린아이를 가지고 살아간다. 이성적 판단과 합리적 행동을 따르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 깊은 곳에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늘 자기 멋대로 하고 싶어하고, 아무것도 책임지기 싫어하는 감정이 존재한다. 어린시절 피터 팬이었던 어른은 어느 순간 피터 팬을 벗어 버리지만, 그렇다고 그 기억까지 지우는 것은 아니다. 그 기억의 방에는 여전히 어린아이가 살아간다. 그 아이는 사랑스럽고, 순수하고, 솔직하고, 귀엽고, 장난스럽다. 하지만 평소에 우리는 그 기억의 방에서 아이가 나오지 못하도록 단단하게 열쇠를 채우고 꼭꼭 숨긴다. 그렇다고 전혀 나올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 것은 기억의 방에 사는 어린아이가 그곳을 나와 마음을 기분 좋게 간질이기 때문이리라.

2007년 프랑스 생나제르에서 최초 전시된 ‘러버덕’

목욕탕 욕조에서 둥둥 떠다녀야 할 작고 귀여운 노란 오리 인형이 집채만 한 크기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면 우리는 어떤 감정을 갖게 될까? 어린 시절에 욕조를 사용했든 하지 않았든, 목욕용 장난감인 노란 오리 인형을 가지고 있었던 없었던, 그것과 관계없이 노란 오리 인형이 우리를 순수했던 어린 시절로 데리고 가지 않을까.

러버덕<사진=러버덕프로젝트 서울 페이스북>

유년 시절에 대한 집단 무의식(칼 융)이 어린 시절의 감정을 불러오지 않을까. 오리 인형이 비현실적으로 거대해서 현실을 벗어난 초현실성을 느끼게 되지는 않을까. 현실감은 떠나가고 유년의 환상이 초대장을 흔들며 우리를 기다리는 순간. 우리가 플로렌타인 호프만(Florentijn Hofman)의 노란 고무 오리 ‘러버덕(Rubber Duck)’을 봤을 때 느끼는 감정이 바로 이 감정일 것이다. 내 안의 어린아이를 다시금 확인하는 그 순간, 그 감정.

네덜란드 출신의 공공미술 작가 호프만이 전 세계의 아이들에게(어른들에게까지) 익숙한 욕조용 장난감 ‘러버덕’을 대형 작품으로 만들어 물 위에 띄우기 시작한 것은 2007년부터였다. 이 거대한 고무 오리는 지금까지 전 세계 16개국 이상에서 50여회를 출몰하며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2007년 프랑스 생나제르에서 최초 전시된 ‘러버덕’은 이후, 독일, 브라질, 벨기에, 일본, 뉴질랜드 등에서 전시되었다. 2013년 홍콩 전시 때에서는 800만명이 관람했으며, 베이징(2013)에서는 입장 수익만 수백억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14년 10월 서울 석촌호수에 한 달간 떠 있으며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았다. 특히 2014년에 온 것은 우리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전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세월호 침몰 사고가 있었던 해였기 때문이다.

호프만은 “석촌호수에 떠 있는 대형 노란 고무 오리를 통해 재난과 사고로 실의에 빠진 한국 국민이 기쁨과 희망을 나누고 상처를 치유하는 ‘힐링’의 기회를 가지길 바란다”고 말하며, 사회적 아픔을 보듬고 위로하는 미술의 역할을 상기시켜 주었다.

‘러버덕’은 우리나라 전시 이후에도 중국, 일본, 미국, 마카오로 전시를 이어갔으며, 올해 8월에는 미국 미네소타 주의 항구도시 덜루스에서 또 다른 커다란 노란 꿈을 띄울 예정이다.

평화와 행복,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시작된 호프만의 공공미술 러버덕 프로젝트는 매번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피습당해 훼손되기도 하였고(벨기에, 2009), 10여개의 짝퉁 러버덕이 전시되기도 했으며(중국, 2013), 많은 사람이 새해맞이를 위해 몰려 있을 때 그들이 보는 앞에서 옆이 떠지는(중국 지룽, 2013)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작품에 바람이 빠져 장시간 동안 반쯤 넘어져 있기도 했는데, 그것이 “‘러버덕’피곤했니?”라는 기사로 전해져 많은 사람에게 작은 웃음을 선사했다.

러버덕, 2013,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출처=www.nbcnews.com>

호프만은 이러한 물리적 문제 보다는 정치적 문제를 더 심각하게 생각하는 듯 보인다. 브라질의 반정부 시위대가 ‘러버덕’을 표절하여 시위에 사용했을 때, 그는 강하게 비난했다. 러버덕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부터 줄곧 호프만은 “어떠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고 말했는데, 브라질 상파울루산업연합(FIESP) 주도의 반정부 시위대가 (검은 눈을 X자 형태로 바꾼 것 외에는) ‘러버덕’과 거의 같은 거대한 오리 인형을 자국의 국회의사당 근처에 세운 것에 크게 반발했다.

호프만은 언론을 통해 적극적으로 이 작품이 명백한 표절이며, 비정치적 의도로 기획된 ‘러버덕’을 표절(혹은 패러디)하지 말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바람은 단지 “러버덕이 당신을 미소 짓게 만들고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가질 수 있게”하고 싶은 것뿐이었으리라.

반복되는 일상에서 특별함을 발견해 즐거움 줘

호프만은 장난감 오리의 친근한 형태에서 ‘익숙함’을, 너무도 거대한 형태에서 ‘낯섦’을 동시에 느끼며 관람자가 어떤 긍정적 자극을 받길 원했다. 그는 오리 외에도 토끼, 곰, 원숭이, 개구리 등을 거대한 작품으로 제작하여 공공장소에 선보여 왔는데, 이것도 긍정적 자극을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기(Defamilarization)’로 표현되는 그의 작품은 특별할 것 없는 것들에서 특별함을 발견하여 반복되는 일상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게 해준다. 특히 어린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재를 선택함으로써 우리의 유년 시절을 떠오르게 하고, 그 시절에 젖어들게 한다. 자유롭고 순수했던 그 시절로 우리를 초대하는 것이다.

‘프루스트 현상(The Proust Effect)’이라는 게 있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특정한 자극으로 인해 무의식적 기억이 떠오르는 현상이다. 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주인공은 어느 겨울날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한입 베어 문 순간, 유년시절 콩브레라는 마을과 그곳에서 겪었던 추억들을 생생하게 떠올린다. 호프만의 ‘러버덕’은, 그리고 어린이에게 친근한 토끼나 곰, 원숭이 같은 다른 작품들은 우리의 유년시절을 생생하게 불러온다. 유년기의 특정 기억이 아니더라도 그 분위기, 그 느낌, 그 정서를 감지하게 한다. 그래서 호프만의 작품이 희망을 노래하고 마음을 위로하는 힘을 지니고 있는 줄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