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 하이트진로, 카카오, 하림 등 자산규모 5조원 이상 재벌급 대기업의 골목상권 ‘접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대규모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자산기준 5조원 이상에서 10조원 이상으로 완화하는 내용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지난 6월 입법예고했기 때문이다. 시행령 개정안이 발효되면 공기업 3곳을 제외하고 골목상권에 접근할 수 있는 ‘허가증’을 신규로 얻을 재벌급 대기업집단은 25개며, 계열사까지 포함하면 560개에 이른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기업집단 지정제도 완화와 중소상공인 업종 등 영향분석’ 토론회   ©중기이코노미

국회 의원회관에서 지난 19일 열린 ‘대기업집단 지정제도 완화와 중소상공인 영향분석’ 토론회에서도 이같은 문제점을 집중 거론했다. 중소기업연구원 이동주 정책본부장은 골목상권 진출 ‘허가증’을 받은 이들 대기업집단과 중소상공인과의 충돌, 그리고 골목상권 붕괴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 본부장에 따르면, 지난 2006년 정부가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를 폐지하면서 두부·된장·고추장 사업에 대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이후 이들 업종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시장점유율은 70%에 이른다. 중소기업이 시장지배력을 가졌던 이들 업종이 급속하게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됐듯이,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인해 같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다.

카카오 사업확장 논란 한창…끝이 아닌 시작

골목상권 접근 허가증을 받은 대기업의 공략은 이미 시작됐다. ‘카카오’의 다방면 사업확장을 놓고 한창 논란중이다. 택시중계서비스인 ‘카카오택시’에 이어 대리운전 호출앱인 ‘카카오 드라이버’, 미용실 예약서비스인 ‘카카오헤어숍’까지 출시했다. 이동주 본부장은 “현재 카카오는 가사도우미, 주차장 세탁서비스 등 앞으로도 다방면에서 사업을 확장하려고 준비중”이라고 말했다.

카카오만큼이나 중소기업·소상공인과의 마찰이 우려되는 대기업이 ‘하림’이다. 대형마트와 SSM에 계란공급을 추진했던 하림은 양계협회의 불매운동으로 2013년 12월 납품계획을 중단했다. 그러다 지난 6월 계란유통협회와의 자율조정 회의를 거쳐 대형마트와 SSM에 계란 공급을 시작했다. 대기업집단에서 제외되면 하림은 대형마트나 SSM 이외 다른 거래처까지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된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은 “하림의 최종 목표는 양계업 관련 분야를 넘어 주류, 식음료, 부동산 중개·임대, 소매업 등 다방면 진출”이라고 주장했다. 하림의 계열사인 ㈜엔바이콘은 현재 물류기지구축사업만 진행하고 있지만 업종은 도소매업으로 분류된다.

시행령 개정으로 족쇄가 풀릴 이들 대기업집단이 현재 진행중인 사업 가운데, 눈에 띄지 않지만 사업확장 가능성으로 중소기업과의 갈등이 우려되는 사례는 많다. 이동주 본주장에 따르면, 코오롱 계열사 ‘스위트밀’은 ‘비어드 파파’라는 슈크림 등 디저트 전문카페를 프랜차이즈 형태로 전국 31개 매장에서 운영하고 있다. 스위트밀은 코오롱인더스트리가 최대주주다. 또 코오롱 계열사 ‘코오롱웰케어’는 드럭스토어인 ‘w-store’를 전국 180여곳 약국을 통해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등 소수품목만을 판매하고 있지만 취급 품목을 늘릴 경우 주변 상권과의 갈등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본부장은 “기업집단 지정해제로 코오롱이 공격적 경영으로 전환한다면, 주변상권·골목상권과의 마찰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골목상권을 위협할 수 있는 사례는 많다. 하이트진로 계열사인 진로양조는 현재 수출용 막걸리만을 생산하고 있지만, 내수용으로 확장할 경우 지역 중소양조기업과 갈등을 빚을 수 있다. 하이트진로산업도 현재는 그룹사 물량만을 제조하지만 사업을 확장하면 유리용기 중소기업과의 갈등이 불가피하다. 한국타이어, 아모레퍼시픽, 이랜드, 교보생명보험 계열사들도 사업을 확장하게 되면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 )안은 자산규모   ©중기이코노미

전국을살리기운동본부의 이동주 정책위원장은 “도소매진흥법이 폐지되고 유통산업발전법으로 바뀌면서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3사가 유통시장 90%를 점유한다. 편의점의 경우에도 중소브랜드는 사라졌다”면서 “이 시장에 다시 중소기업이 뛰어들 여지는 전혀 없다. 기업집단 지정제도 완화가 유통시장에서 대기업과 준재벌집단의 양적팽창만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적합업종, 사업조정…사후대책만 있을 뿐 예방책 없다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에 맞서 현재 중소·영세기업들이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은 적합업종제도와 사업조정제도 정도다. 적합업종제도는 동반성장위의 권고로 대기업의 진출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업종을 지정하는 것이다. 사업조정제도는 대기업 등의 사업진출로 중소기업 경영에 현저하게 나쁜 영향을 미치거나 미칠 우려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사업확장을 연기하거나 사업축소를 권고하는 제도다. 동반위의 적합업종 권고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이 응하지 않는 경우 사업조정제도를 적용한다.

문제는 이 두 가지 모두 행위가 발생한 이후부터 적용 가능해 사전적 제어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사업조정제도는 사업분야 진출 자체를 막을 수 없으며, 적합업종제도는 민간 자율합의 형태다. 이번 시행령 개정에 따라 대기업 집단에서 제외되는 기업들과 동반위가 골목상권 진출을 자제하는 내용의 상생협약을 체결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지만,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전에도 상생협약을 지키지 않은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이 정책위원장은 “홈플러스의 SSM진출에 대해 동반위가 상생협약을 준수해 달라 권고했지만 반응조차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현재로서는 시장감시 기능을 강화하는 것외에 달리 골목상권 침해를 막을 또렷한 수단이 없다. 이 정책위원장은 “현재 대안들이 사후약방문적인 성격이 있다”며 “적합업종 관련 특별법 등을 통해 일단 적합업종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 또 대기업집단의 진출 가능성이 우려되는 업종에 대해 사업개시 한두달 전이 아닌 도시계획단계에서부터 승인을 받는 허가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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