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민은 첫 작업인 <황금투구> 이래로 가족 공동체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삶에 대해 지속적으로 탐구해왔다. 결혼 이후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엄마로서의 자기 환경을 충분히 고려”한 작업을 하기로 결심한 결과였다.

여성이라는 대상이 전면에 드러나서인지, 그의 작업에 대한 대부분의 논의들은 ‘나’가 아닌 ‘여자’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앞선 그의 말처럼 그가 주목한 것은 단지 여성이라는 대상 자체가 아니었다. 그가 여성이라는 대상과 함께 언급했던 ‘환경’도 그의 탐구 대상이었다. 요컨대 그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타자화 된 여성’이라는 낡은 담론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의 사회 경제적 환경에 대한 비평적 탐구도 동시에 수반되어야 마땅하다.

여자의집1-종원이네＃2 (at Jong-won's place＃2), 80×80cm, digital c-print, 1999

가족 그리고 여자의 집

먼저, <여자의 집 1>에서 이선민은 주부이자 엄마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여성들을 재현했다. 끊임없는 가사노동과 육아에 내몰린 채 피곤에 허덕이는 사진 속 여성들에게 ‘자아’라는 단어는 멀게만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들이 가정이라는 테두리에 얽매여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선민은 그 이유가 단지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문화에 있지 않음을 여성들이 처한 주변 환경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거실 한복판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장난감들, 세련됨과는 거리가 먼 실내 인테리어나 가구들은 이들이 육아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핵가족화 된 사회에서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길 만한 여유가 없는 여성들은 육아와 가사의 책임을 온전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여자의 집 2>에서 이선민의 시선은 부모 세대가 거주하는 공간으로 옮겨 간다. 이 연작에서 그는 명절을 맞이하여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이 부모의 집에 모였을 때의 상황을 재현함으로써 가정 내의 남성과 여성, 그리고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 사이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탐구했다. 우선, 대부분의 남성들은 가사 노동과는 무관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안방이나 소파와 같은 생활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여성들은 가사 노동 중이거나 주변 공간으로 내몰린 모습으로 재현됨으로써 지금도 여전한 가부장적 문화와 가족 내 여성의 지위를 드러냈다. 하지만 이선민은 여기에서 단지 여성의 문제만을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같은 가족 구성원임에도 불구하고 어색한 자세로 제각기 다른 곳을 응시하는 모습은 산업화와 핵가족화가 발생시킨 젠더 그리고 세대 사이의 문제들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의집1-종원이네＃2 (at Jong-won's place＃2), 80×80cm, digital c-print, 1999

강원도 도계 지역 가정들을 표본으로 작업한 <도계 프로젝트>에서 이선민은 가족 내에서의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한쪽으로 살짝 밀어두고, 보다 궁극적으로 가족에 대해 묻고 있다. 전작과 달리 이선민은 조상의 묘소나 골목길, 마당 등 가정의 실내 공간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장소들을 보여준다. 또한 외지에서 살고 있는 자식들이 돌아왔을 때의 모습과 이들이 떠난 뒤 외로이 남은 부모들의 모습을 모두 제시한다.

이처럼 그는 도계 지역 가정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록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보편적 가족 문제를 드러내고자 했다. 특히 산업구조의 재편에 따라 탄광 지역이었던 도계 지역은 급격한 쇠퇴와 핵가족화를 경험했을 것이며, 이는 사진 속 인물들을 이해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앞선 작업과 마찬가지로 오랜만에 돌아온 가족 구성원들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어색한 긴장을 연출할 수밖에 없으며, 자식들이 떠나고 남겨진 부모들의 모습은 우리 시대 가부장의 초라한 전형을 보여준다.

여성과 사회가 맺는 복잡다단한 역학 관계 드러내

연작에 이르러 그는 중산층 엄마들의 자식에 대한 욕망을 시각화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또 다른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가령 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고 있는 엄마와 딸의 모습은 딸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는 여성의 심리상태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또한 세심하게 꾸며진 아이들의 방, 빽빽하게 꽂힌 책들, 벽면에 붙여 놓은 알파벳과 세계지도 따위는 이 여성들이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케 한다. 최고의 교육을 통한 상류층으로의 신분상승, 자신이 이루고 싶은 그 꿈을 아이들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Translocating Women-김현정과 그녀의 아이들, kim Hyeonjeong and her children, 120×180cm, digital c- print, 2012

이후 오랜 휴지기를 거친 이선민은 을 통해 우리나라로 이주한 여성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한국 남성과 결혼해 고국인 캄보디아나 베트남 등으로부터 떠나온 여성들에게 주목한 것이다. 이 작업에서도 이선민은 이들을 ‘타자’라는 단순한 프레임으로 고착화시키지 않는다. 사진 속 이주 여성들은 분명 이방인으로 취급당하며 얼마간의 불평등과 아픔을 경험하겠지만, 이선민의 사진은 이를 웅변적으로 재현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이들을 그들의 생활공간 내에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포착했고, 이를 통해 그들 삶의 방식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타자로서의 아픔 자체보다 그들 삶 전반을 톺아보고자 했던 그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처럼 이선민은 오랜 시간 동안 끈질기게 우리 사회의 수많은 여성들을 관찰하고 기록해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이 여성들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다. 그는 이들을 소외된 자, 핍박받아온 자, 타자로 밖에 살 수 없는 자로만 규정하지 않는다. 그는 단순히 여성을 타자화 하는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성과 사회가 맺는 복잡다단한 역학 관계를 드러내기 위해 카메라를 들어왔다. 비판은 그 이후에 하는 것도 늦지 않으므로.[장정민 한국사진문화연구소 연구원, 미술평론가]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