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대기업 편향 경제정책을 비판할 때면 단골로 등장하는 단어. ‘사내유보금’이란 표현을 ‘창출자본’ 또는 ‘세후재투자자본’으로 바꾸자고 한다. 한국경제연구원 권태신 원장은 “실제와 달리 기업 내부에 쌓아놓은 돈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실상을 반영한 새로운 용어를 모색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원사들의 회비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권 원장의 발언은 전경련의 주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30대 기업집단의 사내유보금은 478조원에 달한다. 2006년 127조4000억원과 비교하면 10년 동안 무려 3배 가까이 증가했다. 반면 한국은행 가계신용동향에 따르면 같은 기간 동안 가계부채는 607조원에서 1203조원으로 2배 늘었다. 

30대 기업집단의 곳간에 돈은 쌓여만 가는데, 반면 가계의 빚은 늘어만 가는 것에 일말의 미안함이 있었던 것인가. 아마도 이같은 추세가 상당기간 계속될 것임을 알고, 이름 세탁을 통해 계속될 수밖에 없는 비난을 회피하고자 하는 생각이리라. 껍데기를 바꾼다고 알맹이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사내유보금의 외관이 현금이 됐든, 땅이 됐든 생산에 투입돼 부가가치로 창출하지 못하는 한 그것은 ‘유보금’일 뿐이다.

올해 대한민국 정부 예산 규모는 386조7000억원이다. 그런데 30대 기업집단의 사내유보금이 478조다. 가늠하기 조차 어려운 천문학적인 규모의 사내유보금은 어디서부터 나온 것인가. 길가다 지갑을 주은 것이 아니라면 누군가의 노동과 자본이 어우러져 부가가치로 창출된 것이다. 사내유보금 478조원의 출처가 어디인가.

<자료=한국금융연구원 박종규 선임연구원, '고령화, 저성장, 장기재정전망 및 정책방향'>

98년 외환위기 이전 근로자의 실질임금 증가율은 노동생산성 증가율보다 높았다.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 초까지는 임금과 노동생산성은 유사한 비율로 증가했다. 아마도 이 즈음까지는 기업이 창출한 부가가치를 분배함에 있어, 기업과 근로자간의 분배가 비교적 균형이 맞았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노동생산성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근로자의 실질임금은 6년째 사실상 동결됐다. 기업이 번 소득의 대부분이 기업쪽으로 몰리기 시작했고, 그 정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 갔다.노동생산성과 실질임금 증가율이 지금과 같은 추세를 유지한다면 그 격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기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부자가 되고 가계는 갈수록 가난해질 뿐이다. 12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가 그것이다. 

최근 경기침체와 함께 내수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가운데서도 ‘최대’, ‘서프라이즈’ 등의 수식어와 함께 삼성전자, LG전자, SK 등 대기업집단의 상반기 실적이 연일 발표되고 있다. 대기업집단의 실적이 ‘최대’, ‘서프라이즈’가 되면 될수록 노동생산성과 실질임금 증가율은 더 벌어진다는 것이 지난 10년간의 경험이다. 그래도 우리나라 기업이니까 애국한다는 차원에서 박수를 쳐야하나.

대내외 어려운 여건 속에서 중소·영세기업 그리고 가계 각자 고군분투하는 면전에서 전경련이 해야 할 일은 이름세탁 이건 정말 아니다. 노동생산성에 맞는 ‘정당한 임금’을 주는 노사관계를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원하청관계를 착취와 갈등에서 공존과 동반의 관계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해서 크든 작든 기업, 근로자, 가계 모두가 기업의 실적으로 함께 나눌 수 있는 경제환경을 조성하는 일, 전경련이 할 일이고 나라사랑이다.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