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3사의 구조조정에 조선·해운업이 뒤숭숭하다. 미래 먹거리로 주목을 받았던 해양플랜트도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1차 원인은 유가 하락이다. 해양플랜트는 바다에 매장된 석유와 가스를 시추하는 사업이다. 해양유전은 육상보다 채굴단가가 높은데, 최근 유가가 폭락하며 해양플랜트 수요도 떨어졌다. 발주사의 해양플랜트 계약 취소도 잇따랐다.

국내 해양플랜트 산업의 근본적인 문제는 기술의 해외 의존도다. 덩치가 큰 시장이라 일단 뛰어는 들었는데 준비가 돼있지 않았다는 의미다. 해양플랜트와 조선은 다른 양상이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가 산업통상자원부 의뢰로 작성한 ‘해양플랜트산업 경쟁력 분석 및 장단기 발전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조선업 기자재의 국산화율은 80~90%인데 반해 해양플랜트는 20%에 불과하다. 

핵심 기자재 대부분은 수입해 오고 있다. 종류별로 보면 전기장치의 35~45%, 기계장치의 15~20%만이 국내산이다. 해양플랜트 핵심장비인 안전 설비의 국산화율은 5% 안팎이다. 해양플랜트의 핵심인 기본설계(FEED)와 톱사이드(topside) 엔지니어링 기술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FEED 단계에서는 플랜트의 기본적인 운전과 설치, 유지보수, 폐기를 고려한 설계를 진행한다. 톱사이드 엔지니어링은 석유·가스 불순물을 처리, 정제하는 해양기술설비다. 

해외 벤더로부터 기자재를 들여오다 보니 각종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시차와 거리상 문제로 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납기 관리도 까다롭다.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미팅을 해야 하는 것도 현실적인 어려움이다. 해양플랜트 기술과 신뢰도 모두 유럽이나 미국과 비교하면 상대적 열위라는 것이 보고서의 설명이다.

해양플랜트는 진입장벽이 높은 산업이다. 수주가격이 비싸 탐나는 분야이나 지속적인 수요를 예측하기 어려워 중소기업이 투자하기 쉽지 않다. 국내 사업체 수도 적은 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해양분야 전체 사업자는 2014년 기준 147개로 소기업이 130개, 중기업이 10개, 대기업이 14개다. 업체 수로 보면 소기업이 88%를 차지하나 종사자의 97.6%는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STX조선해양 등이다.

중소기업청이 발간한 ‘중소기업 전략기술로드맵 2016-2018’에 따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기자재 국산화 작업을 함께 진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기업은 자금을 대고 기술을 이전해주며, 중소기업이 연구를 수행하는 식이다. 

부산의 조선해양 기자재회사인 NK㈜는 올해 삼성중공업과 알루미늄 헬리데크를 국산화하는데 성공했다. 2013년부터 3년간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해온 끝에 이룬 쾌거다. 헬리데크는 해양플랜트에 설치하는 헬기 착륙장으로, 지금까지는 전량을 해외에서 수입해 왔다. 국산화에 성공한 헬리데크는 알루미늄 합금 소재를 써 기존 제품보다 중량을 30% 줄였다. 이 제품은 삼성중공업이 건조하는 해양플랜트에 납품하기로 했다. 

NK는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주최하고 대우조선해양이 주관한 테마 클러스터 사업에도 참여해 국산화에 성공했다. 시추할 때 배의 흔들림을 잡아주는 압력용기 모듈이다. 4일 한국산업단지공단 부산본부 문찬희 과장에 따르면, NK는 이 모듈을 대우조선해양에 납품해 2014년 4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울산 선박엔진부품 회사인 대창메탈㈜도 같은 과제에 참여해 극지 시추선용 유정굴장장치 드럼을 국산화했다. 대창메탈은 이 드럼을 해외 벤더에 납품해 13억원을 벌어들였다.

테마 클러스터 사업을 총괄한 대우조선해양 배재류 전문위원은 4일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대우조선해양이 자금을 투자하는 한편, 중소기업이 벤더에 납품할 수 있도록 소개도 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협력관계가 잘 형성됐다고 본다”면서 “테마 클러스터 사업은 종료됐지만 해양플랜트 국산화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단순 기자재는 상당부분 국산화가 이뤄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