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88’이다. 전체 사업체 수의 99%, 전체 고용인원의 88%를 중소기업이 책임진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이 살아야 국민경제도 발전하고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어진다. 지금과 같은 대기업 중심의 생태계 속에서는 고용없는 성장, 대·중소기업간 양극화만 심화될 뿐이다. 고용창출의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이 덩치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아울러 중소기업 중심의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대기업이 성장해야 중소기업의 경쟁력도 따라 상승한다는 낙수효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 정책결과, 남은 것은 대·중소기업간 수직계열화된 원하청 구조다. 이 때문에 대기업에 기대지 않고 중소기업 스스로 글로벌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고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졌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중소기업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21.1%에서 2013년 17.5%로 하락했다. 중견기업도 크게 다르지 않아 15%대를 유지했다. 반면 같은 기간 대기업은 62.8%에서 66.8%로 증가했다.

제조업 중소기업 내수·수출 비중

<자료=중소기업연구원>

대표적 수출 주력업종인 자동차·트레일러, 전자부품·컴퓨터·통신장비, 기타운송장비 관련 중소기업들의 주요 시장은 내수다. 10개의 제품을 생산하면 8개를 국내에 판매한다. 이들 업종이 생산하는 제품의 대부분은 소비자에게 최종적으로 전달되는 제품이 아니라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간재 제품이다. 실제 이들 업종 10곳중 7곳은 대기업과 하도급관계를 맺고 있다. 자동차·트레일러업종과 전자부품·컴퓨터·통신장비업종의 경우 이들 기업의 판매액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79%와 76%다. 기타운송장비업종의 경우는 대기업 의존도가 더 심해 무려 92.7%에 달한다. 그나마 수출 경쟁력이 있다는 제조업 중소기업들도 10개를 생산하면 2개를 해외시장에 팔기 힘들다. 수출부문에서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 정책이 가져온 것이다. 그렇다고 대기업이 일자리는 만들었나? 그렇지 않고 오히려 줄였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EU국가중 국민소득이 1~2만달러인 그룹은 대기업 종사자 비중이 높고, 2~4만달러 그룹은 다른 그룹에 비해 소상공인 비중이 높으며, 4~5만달러 그룹은 다시 대기업이 높다. EU국가들과 한국의 국민소득, 경제규모 등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우리나라의 대기업 종사자 비중은 절대적으로 작다. EU국가들의 대기업 평균 고용비중이 32.7%이고 4~5만달러 그룹의 대기업 고용비중은 이보다 높아 37.8%다. 1~2만달러 그룹의 대기업 고용비중도 20% 후반대다. 이외 일본이 24.2%, 대만 21.7%, 미국 52.6%, 영국 39.7% 수준이다. 중소기업 강국인 독일은 40%다. 그러나 국내 대기업 종사자 비중은 1994년 24.9%를 정점으로 2004년에 13.6%, 무려 11.3p나 떨어졌다. 이후 2014년 12.1%로 지속적인 하락세다.

2014년 기준 국내 대기업 종사자 수는 193만5000명으로, 외환위기 당시 220만5000명 수준을 17년이 지난 지금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대기업 스스로 고용을 늘리겠다는 의지 자체가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대기업은 지속적으로 생산비 절감 등을 이유로 공정자동화와 함께 생산을 외주화함으로써 수직계열화된 원하청 구조를 더욱 공고하게 구축했다.

EU와 한국의 기업규모별 종사자 비중

<자료=중소기업연구원>

한국생산성본부가 2015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은 2001년 7000만원에서 2013년 1억700만원으로 52% 증가했다. 반면 제조업 대기업 노동생산성은 같은 기간 1억9000만원에서 2013년 3억6400만원으로 두배 가량 늘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간의 노동생산성 격차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중소기업간 노동생산성 격차를 완화하고 고용없는 성장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소기업이 중기업으로, 또 중기업이 중견기업으로 규모를 키울 수 있는 경제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R&D를 위한 안정적 투자기반을 확충하는 한편 고급인력이 중소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정부차원의 제도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아울러 대·중소기업간 수직계열화된 원하청구조에서 중소기업이 벗어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원청에 대한 중소기업의 의존도를 낮춰 해외시장 판로를 확대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제도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이 해외시장 또는 해외기업과 직접 거래할 수 있는 수출여건을 만들고, 세계시장에서 해외 중소기업과의 경쟁을 통해 기업을 견고하게 키우자는 것이다.

이와 관련 경제개혁연구소 위평량 박사는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해외로의 판로 개척과 중소기업의 중견기업화 방향은 맞지만, 중소기업이 이를 행하긴 쉽지 않다”며 “새로운 산업으로 진출하고 해외로 나가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기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중소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중소기업 스스로의 혁신과 함께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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