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은 제품을 찍어내는 곳 이전에 사람이 있는 곳이라며 ‘살 맛나고 일 맛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는 ㈜일신에스앤씨 이종일 대표.   ©중기이코노미

중국 기술추월로 사업전환, 실내건축 전문기업으로 재도약

대학에서 무역을 전공한 이 대표는 무역회사를 다니다가 1990년 일신실업을 창업했다. 정전기 중화장치를 개발해 국내 대기업에 납품하고, 중국·동남아시아 등 해외시장에 수출했다. 정전기 중화장치는 반도체 생산라인 등에서 정전기를 제거하는 기기다. 한창 사업을 확장해 나가던 그는 “예기치 못한 위기를 맞았다”고 했다. 2000년대 초 일신의 제품을 수입하던 중국기업으로부터 역제안을 받았던 것. 중국기업은 일신이 판매하던 제품보다 성능이 더 나아진 제품을 생산해 같은 가격에 수입하라고 제안했다. 기술추월을 당한 것이다.

이 대표는 삼성이나 엘지 등에 기술개발을 제안해 위기를 극복하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충격적이었고 손실이 컸다. 이 대표는 가망없는 사업에 더 이상 매달릴수 없어 과감하게 접었다. 이 대표는 업종전환을 결심하고 직원들의 이력서를 살펴보던 중 건축을 전공한 직원이 세명이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대표는 그 직원들과 새로운 사업을 논의해 2005년 실내건축 전문기업 일신에스앤씨를 설립한다.

“믿을 수 없는 기업과 거래하지 말고 저가수주 하지 말자”

김연금 작가의 만날봉 기쁠봉 ‘봉봉정’(위). 근로자들이 풍경을 감상하고 짧은 시간 자신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열린 정원이다. 최정화 작가의 ‘당신의 꽃입니다’와 조민석 작가의 ‘꽃방석’(아래). 부천테크노파크 1단지 근로자들의 이동이 제일 많은 공간에 마련된 휴식공간이다.<사진=부천테크노파크 1단지>

건설분야에 문외한이었던 이 대표는 사업초기 수업료를 많이 지불해야 했다. 어음부도도 여러번 경험했고, 공사기간이나 결제일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당시 특유의 건설 현장문화 때문에 곤란을 겪은 것도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 대표는 “무엇보다 작은 신생기업이 다가가기에는 건설시장의 장벽이 너무 높았다”고 했다.

그는 대외활동에 적극 나섰다. 부천테크노파크 1단지 입주사 대표회의 회장을 시작으로 부천시 옴부즈맨 위원, 부천노사공동운영위원회 위원 등 지역사회활동으로 보폭을 넓혔다. 지역에서 인지도가 높아지며 그는 저가수주 문화를 극복하려고 힘썼다. 이 대표는 “건설사들이 입찰할 때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시공사들의 저가수주가 심각하다”며 “처음에는 저가입찰도 했었다. 하지만 직원들은 현장에서 고생하는데 정산해보면 마이너스였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두 가지 원칙을 정했다. ‘신뢰할 수 없는 기업과는 어떤 거래도 하지 말것’과 ‘놀지언정 저가수주는 하지 말 것’이었다. 처음엔 직원들이 걱정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부실채권이 거의 없고 거래처와의 신뢰관계도 두터워지는 결과를 낳았다.

건물외벽에 있는 박은선 작가의 유기적 공간. 작가는 생산이라는 행위가 단순한 노무가 아니라 우주적 에너지의 연결고리이자 삶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표현한다. <사진=부천테크노파크 1단지>

“신나는 일터, 일할 맛나는 일터 만들고 싶었다”

현재 부천테크노파크 1단지 입주사 대표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이 대표는 17년전 부천테크노파크 1단지가 조성될 때 입주한 터줏대감이다. 그는 이곳 부천테크노파크 1단지를 작고 강한 중소기업 메카로 만들고 싶었다.

“이곳은 기업·연구소·대학·정부가 집적화돼 있고, 도로·철도·항공·해운 등 교통과 물류의 편의성도 뛰어나 기업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을 갖고 있습니다. 흔히 공단이라고 하면 딱딱하고 어둡고 지저분한 이미지를 먼저 떠올릴 수 있는데, 이곳은 사람이 있는 곳입니다”

4단지까지 조성된 부천테크노파크에는 800개 중소기업이 입주해 있고, 1단지에만 220여개 기업 2200여명의 근로자가 있는데, 근로자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곳을 ‘신나는 일터, 일 맛나는 일터’로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다.

때마침 2012년 경기도문화재단으로부터 공공예술프로젝트 제안이 있었다. 도예가인 선친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탓인지 그는 그 프로젝트를 꼭 진행하고 싶었다. 적지 않은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이었기에 입주자 대표회의에 안건을 상정해 설득했다.

경영자·근로자·지역주민 모두가 만족하는 ‘예술공단’

2012년부터 3년에 걸쳐 부천테크노파크 1단지 공단에 예술이 덧씌워졌다. 네모반듯한 공단 외벽에는 그림과 색을 입혔다. 건물 내부벽면은 하나의 캔버스처럼 구성해 미술작품들을 담았다. 공단 외부에는 녹지 정원과 쉼터를 꾸몄고 조형물을 설치했다. 모두 경기도문화재단에서 추천한 유명작가들의 작품이다.

건물 외벽에 표현된 정인완 작가의 ‘자연산 자연으로Ⅱ’.<사진=부천테크노파크 1단지>

“사람들의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이면 근로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늘었죠. 저 자신도 머리가 복잡할 땐 건물 외벽 사이와 정원 등을 거닐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 만족합니다. 거래처 사람들도 찾아오면 사업 얘기보다 공단환경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하곤 합니다”

변화는 이곳 사람들 사이에서도 일어났다. 옥상텃밭 동호회, 캐리커처 동호회, 근로자합창단 등이 자발적으로 생겨났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의 날 행사에서는 무료로 영화를 상영하고, 동호회 등 각종 모임이나 문예 아카데미 등도 운영한다.

이 대표는 올해 초 부천테크노파크 단지 4곳을 잇는 둘레길을 만들자고 부천시에 제안했다. 부천시는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했고, 8월말부터 둘레길 조성사업을 시작한다. 이르면 올 가을부터 둘레길에서 경영자, 근로자, 지역주민이 함께 어우러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대표는 “중소기업 한곳이 직원 편의시설을 갖추며 직원복지를 향상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곳은 여러 기업이 모인 곳이기 때문에 여럿이 힘을 모아 공동복지를 실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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