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마케팅연구소 김용빈 소장, 국제개발학 박사

그러나 요새 한국 날씨는 한국에 살고 있는 아프리카 친구들에게도 낯설 정도로 덥다. 콩고 친구도, 케냐 친구도 너무 더워 못살겠다고 한다.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아프리카 사람들이 뭐 이정도 가지고…’ 하면서 의아하게 바라보는 한국인들이 많은데, 이건 정말 너무한 편견 혹은 무관심이다.

이런 편견과 무관심 속에, 아프리카가 무려 54개국으로 이뤄진 거대한 대륙이라는 것을 자꾸만 잊어먹는 분들을 깜빡 속인 뉴스가 있다. 최신 뉴스는 아닌데, 최근에 해프닝으로 밝혀진 ‘패트병 에어컨’과 관련돼 다시 회자되는 ‘에어컨 없는 아프리카 백화점’이다. 다른 곳도 아니고, 국내 유수의 과학기술연구원의 칼럼니스트도 속았다. 그러더니 최근에는 언론메체에서 동영상 자료까지 만들어 전파하고 있다.

이스트게이트 쇼핑센터<자료=David Brazier, Wikipedia>

에어컨 없는 아프리카 백화점 얘기를 요약하자면,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Harare)에 있는 이스트게이트 쇼핑센터를 흰개미집에서 영감을 얻어 공기순환만으로 시원하게 유지하도록 지었다는 것이다. 소개하는 과정에서 생물학과 건축학의 만남으로까지 비약하면서 ‘메디치 효과’라는 낯선 개념도 들먹이고 있다. 과학적 ‘사실’이 창조경제인지, 이런 얘기를 아무런 검토없이 카드뉴스나 동영상으로 재창조하는 것이 창조경제인지 모르겠다.

이 설명에 동원된 모든 과학이론을 사실이라고 하자. 하지만, 이걸 하나하나 과학적으로 검증할 능력이 내겐 없다. 그래서 약간 무식해 보이는 계산을 해봤다.

이스트게이트 쇼핑센터는 10층 건물이다. 대략 40m 정도 높이이지 싶다. 인간 평균 신장의 약 20~25배 정도의 높이다. 모델로 삼았다는 흰개미 집은 낮으면 2~3m, 높으면 6~7m까지 된다. 흰개미 신장(길이)을 1cm라고 하면 수백배의 높이가 된다. 흰개미가 인간만큼 크다면 모든 흰개미 집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381m)이나 부르즈칼리파(828m) 높이가 된다. 높이뿐 아니라 구조물의 상대적 폭도 엄청난 차이가 난다.

높은 건물을 짓는 데는 낮은 건물을 지을 때와 차원이 다른 노력이 들어간다. 100층 건물을 올리려면 10층 건물 10채 짓는 노력이 아니라,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건 인간이나 개미나 마찬가지다. 흰개미가 심심해서 그렇게 높은 구조물을 올릴 리가 없다.

흰개미의 지혜를 그대로 빌리려면 진짜 산더미 만한 건물을 지어야 할지도 모른다. 아래 그림을 보면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자료=Eugene Tsui, Wikimedia>

그런데, 과학지식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으니 어떻게 하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아는 하라레는 에어컨이 별로 필요 없는 도시다. 긴 말이 필요 없고, 아래 표를 보자.

<자료=climate-data.org>

하라레는 남위 17도에 위치하지만 고도가 해발 약 1500m나 된다. 태백산 정상에 있는 도시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연평균 기온이 18도 밖에 안된다. 연간 가장 더운 때라도 28도 정도다. 습도도 낮다. 에어컨이 얼마나 필요하겠는가?

이 오류는 ‘40도가 넘는 아프리카’라는 전제에서 시작된다. 이른바 ‘섣부른 일반화’다. 아프리카에서 40도를 넘는 지역이 어디인지 나는 모른다. 가본 적이 없다. 연평균 기온이 40도를 넘을 리는 없고, 연중 최고기온이 40도를 넘는 지역이 아프리카 대륙 어딘가에는 있을테지만, 21년째 20여개 나라를 다니면서도 난 아직 가본 적이 없다.

생각을 바꿔보면, 아시아에는 기온이 40도가 넘는 지역이 없나? 우리보다 북쪽에 있는 몽골의 사막부터 중국 남부, 이란 북부 등이 대표적으로 더운 지역이다. 한국도 1942년 8월1일 대구의 한낮 기온이 40도까지 올랐다는 기록이 있다. 아프리카에서 40도가 넘는 지역이 있어도 그리 희한한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시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아프리카 시장’이라고 해서 커다란 (유라시아 대륙 다음으로 큰) 대륙을 하나의 단일시장으로 상정하는 것부터 명백한 오류다. 단일국가 시장인 중국도 성(省)마다 다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중국 인구가 십수 억명이나 되니 치약 하나씩만 팔아도 그게 얼마냐 하는(단 한 순간도 진실인 적이 없었던) 얘기를 중국시장 전문가들이 가장 싫어한다. 단일 소비재 품목으로 중국시장을 석권한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보다 면적이 몇 배나 크고, 서로 다른 환경과 제도를 가진 54개국이 존재하는 아프리카를 묶어서 ‘아프리카 시장’이라고 부르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하라레 상황을 돌이켜보자. 기온이 40도를 넘는다는 잘못된 전제를 곧이곧대로 믿으면, 하라레는 에어컨 시장의 중심지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보다는 인구밀집이나 고지에서의 불완전연소에 따른 매연 발생에 대응하는 공기정화기, 추운 밤을 나게 해줄 솜이불이나 순간온수기 등을 팔려고 더 노력해야 하는 시장이다.

환경과 규제의 다양성, 변화는 비즈니스에 위협이자 기회다. 변화를 적절하게 수용하고, 규제를 활용하는 것이 비즈니스의 시작이다. 아프리카라고 다르지 않다. 시작은 사실을 사실 그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정보든 너무 부정적이거나, 너무 긍정적이라면, 일단 ‘합리적으로 건전한 수준에서’ 의심해봐야만 한다. 진실은 일반성과 특수성의 균형 위에 서 있다.

아프리카 시장에 대한 오해도 이 무더위와 함께 물러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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