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사법 선진국에서만 시행한다는 것은 편견이고 잘못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보다 사법체계가 발달하지 않은 중국이 한국보다 광범위하고, 강력하게 시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순열 변호사(경실련 시민권익센터 운영위원장)는 경실련과 독일 정당재단인 콘라드아데나워재단이 31일 공동주최한 징벌적 손해배상 관련 토론회에서 “사법후진국이라 불리는 중국에서도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활발하게 도입하고 있다”며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김정욱 변호사(징벌적 손해배상을 지지하는 변호사·교수 모임 공동대표)에 따르면, 중국은 총 8개 법률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기업이 상품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사기행위가 존재할 경우 구입금액의 2배를 배상하게 하는 ‘소비자권익 보호법’, 서면계약서 없이 고용할 경우 사용자가 월급의 2배를 지급하도록 하는 ‘근로계약법’, 특허 침해시 특허사용료의 1~3배를 배상하게 하는 ‘특허법’ 등이 대표적이다. 

중국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더욱 공고해지는 추세다. 2008년 멜라닌 분유 파동이 터지자 2010년 식품안전법도 개정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했다. 식품안전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식품을 생산하거나 알면서도 판매했을 경우 기업이 10배 배상금을 지급하도록 만든 강력한 법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영미법의 전유물이라는 의견에 대한 반박도 나왔다. 한국과 같은 대륙법 계열인 중국은 활발히 시행하고 있다는 것이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대륙법이란 독일·프랑스 등이 채택하고 있는 성문법 체계로 한국은 여기에 속한다. 영미법은 판례가 곧 법이 되는 불문법 체계다.

징벌적 손해배상이란 가해자가 악의적으로 불법행위를 해 손해를 입혔을 경우, 피해자가 입은 실제 손해에 징벌적 의미를 추가해 배상하도록 만든 제도다. 영미법계 국가들에서 주로 시행하고 있다. 영국은 법원이 손해배상 구간을 정하면 배심원이 배상액을 결정한다. 미국도 대다수 주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며 운영 중이다.

한국도 하도급법, 기간제법, 신용정보법 등 일부 법률에 한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나 범위가 좁은데다 거의 활용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하도급법의 경우 2011년부터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기 시작했으나,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하면 2016년 7월까지 제기된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단 한 건 뿐이다.

한국에서도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확대하기 위한 입법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으나 대부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동양 증권 사기발행 사태, 개인정보 유출 사태, 가습기 살균제 사태 등 이슈가 있을 때마다 발의됐다가 공감대를 얻지 못해 생명력을 잃었다는 것이 조순열 변호사의 설명이다. 조 변호사에 따르면 19대 국회에서 금융소비자법, 개인정보보호법, 제조물책임법, 하도급법 등 총 37개의 징벌적 손해배상 관련 법이 발의됐으나 2건을 제외하면 모두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20대 국회에도 입법 움직임은 있다. 지난 6월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국회의원 등 12명 의원은 의도적으로 위법행위를 했을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징벌적배상법안’을 발의했다. 지금까지 법안들이 개별법에서 도입하는 방식을 취했다면 이 법은 일반법으로 전면 도입하자는 것이 차이다.

도입 방식에 대해서는 두 변호사의 의견이 갈렸다. 조순열 변호사는 “20대 국회에 발의된 징벌적 손해배상법안과 같이 전면적인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반면 김정욱 변호사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엔 우선 특별법으로 도입하고, 점차 제도가 안착되면 일반규정으로 도입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