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간지 8일째, 물류대란에 따른 파장이 확산되고 있음에도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 물류대란을 수습하기 위한 주체도 없다. 금융위원회만 이따금 ‘원칙있는 구조조정’ 발언만 반복할뿐 무정부 상태나 마찬가지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지 7일만에 처음 열린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조차 최대 관심사인 자금지원 방안은 없었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당정 협의를 통해 ‘1000억원+α’ 지원방안을 제시했다. 한진그룹이 자산을 담보로 제공할 경우 자금을 빌릴 수 있게 해 주겠다는 꼬리표를 붙였다. 한진해운의 최대 주주인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을 제외하면, 한진그룹에게 무슨 책임이 있다고 담보를 요구하는지 알 수 없다. 한진그룹 계열사들이 배임논란을 감수하고 담보를 제공하기는 난망하다는 점에서 ‘1000억원+α’는 그냥 해본 소리에 불과하다. 정부를 포함 물류대란을 불러온 당사자인 한진해운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까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눈치만 보고 있는 셈이다.

물류대란이야 시간이 지나면 어떤 형태로든 진정될 것이다. 물류대란과 함께 풀어야 할 문제는 한진해운에 대한 법정관리를 계속 진행할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청산절차를 밟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또 한진해운을 포함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을 어떤 방식으로 연착륙시켜야할지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한진해운을 청산하면서 한진해운의 영업력, 기술력, 노하우와 인력 모두를 버릴것이 아니라면. 

한진해운 선박들이 140억달러(약 15조2740억원) 규모의 화물을 선적한 채 전 세계 바다 곳곳에서 표류하고 있다. 한진해운의 운송지연으로 인해 무역회사와 화물주, 유통업체들의 직접적인 피해, 운송계약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금 등 시간이 지날수록 그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이 모든 피해는 궁극적으로 한진해운이 회생을 통해서 감당하든지,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추경을 통해 확보한 4조2000억원에서 충당될 수밖에 없다.

어떤 방식이든 물류대란의 파장을 최소화해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가 커지는 만큼 한진해운의 회생 가능성도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른바 골든타임을 놓쳐서 한진해운도 죽이고 조선해운업 구조조정도 실패하는 파국을 원치않는다면, 이젠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 

한진해운 경영부실의 최종 책임자인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은 자신이 공언한대로 1000억원을 하루라도 빨리 한진해운에 지원해야 한다. 물론 이 돈으로 한진해운 선박들이 바다를 떠돌지 않고 모든 화물을 하역할 수 있을지는 현재 알 수 없다. 한진해운이 현재 체납 중인 하역운반비는 최소 2000억원 정도로 추정되며 장비임차료, 용선료, 유류비 등을 더하면 그 금액은 6500억원 이상이다. 그렇더라도 1000억원을 투입함으로써 채무변제시기를 늦추고 화물을 하역할 수 있다. 나아가 회생이든 청산이든 그에 따라 필요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정부도 금융위원회 뒤에 숨어있지 말고 필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청와대, 국무총리실 그리고 기획재정부에 물류대란은 남의 일인가. 산업정책의 주무부서인 산업통상자원부, 물류정책의 주무부서인 해양수산부 모두 머리를 맞대고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관련한 역할과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눈에 보이는 기관은 금융위원회뿐이다.  

금융위원회는 8일 시작된 ‘서별관청문회’에 제출한 한진해운 현안보고를 통해 한진해운과 대주주의 책임을 전제로 채권단과 협의하에 이미 선적된 화물 처리에 필요한 지원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물류대란 이전과 이후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원칙있는 구조조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급변한 상황, 위기의식을 전혀 갖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더 이상의 골든타임을 허비하지 말고 정부가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한진해운에 대해 회생계획이 있는지, 아니면 물류대란 진정 이후 청산절차를 밟을 것인지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한진해운에 대한 회생 또는 청산방침 각각에 따라 다른 계획과 절차가 필요한 만큼 이것부터 정리하는 것이 먼저다.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