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전도시락에 관광객만 있을 뿐 단골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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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전도시락에 관광객만 있을 뿐 단골은 없다” 소문난 ‘도시락카페’ 비가맹 상점 불만 고조…상인회 “활성화 고민”

기사입력2016-09-23 00:00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서울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약 10분 거리에 있는 통인시장은 ‘엽전도시락’이 유명하다. ©중기이코노미

서울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약 10분 거리에 있는 통인시장. 점심 무렵이 되자 ‘엽전’을 사려는 사람들의 줄이 이어졌다. 통인시장의 명물 ‘엽전도시락카페’를 이용하기 위해서다. 1전에 500원인 이 엽전은 5000원 이상 구입할 수 있다. 엽전을 구입하고 도시락용기를 받아 시장 곳곳에서 엽전으로 먹거리를 구입해 담아오면 시장안에 마련된 카페공간에서 먹을 수 있다.

지난해 엽전도시락카페 이용고객이 20만명을 넘을 만큼 통인시장 엽전도시락카페는 서울에서 꼭 한번 들러야 할 관광포인트로 소문나 있다. 내국인 뿐만 아니라 개인 또는 단체로 찾는 외국인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기자가 이곳을 찾은 22일에도 한 여행기획사가 한 무리의 외국인 관광객을 이끌고 왔다.

통인시장은 일제강점기였던 1941년 효자동 인근 일본인들을 위해 설립된 공설시장이 그 시작이다. 이후 인구가 늘며 통인동, 효자동, 청운동 등 인근 주민의 상차림을 도맡아왔다. 2000년 전후로 여느 전통시장처럼 통인시장에도 쇠락의 시기가 찾아왔다. 찾는 사람은 줄고 떠나는 상인이 늘었다.

전통시장 살리기 위해 마을기업 설립 ‘엽전도시락카페’ 운영

상인회를 중심으로 통인시장의 옛 명성을 되찾자는 움직임이 인건 2005년경이었다. 아케이드형으로 시설을 현대화하고 고객만족센터를 만들었다. 공용화장실도 새로 지어 이용객의 편의를 높였다. 하지만 상인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수익사업이 필요했다.

통인시장 상인회는 2011년 서울형 사회적기업인 마을기업 ‘㈜통인커뮤니티’를 설립하고 ▲통합콜센터 및 쇼핑몰 ▲엽전도시락카페 ▲DIY목공방 ▲배송사업 등을 운영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전통시장을 부활시킨 모범적인 사례로 각종 언론에 소개됐고, 주말이면 발 디딜 틈 없을 만큼 많은 관광객이 이곳 통인시장을 찾는다.

도시락카페에 사용되는 엽전(왼쪽)과 엽전을 구입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중기이코노미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성공 뒷 편에는 한숨 짓는 상인들이 있었다. 통인시장에서 영업 중인 점포는 78곳. 이중 도시락카페 가맹점은 24곳이다. 반찬류, 분식류, 음료 등 먹거리를 판매하는 상점에만 도시락카페 가맹자격이 주어진다. 도시락카페의 유명세로 많은 사람이 찾지만, 도시락카페 가맹점이 아닌 야채·청과·정육·수산·의류수선 등 50여개 이상의 상점들은 이 혜택에서 소외된 것이다.

통인커뮤니티의 심계순 관리부장은 “모든 점포에 가맹자격을 주고 있지 않다. 통인시장은 소매시장이기 때문에 시장고유의 영역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점포가 먹거리 점포가 되면 전통시장으로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통인커뮤니티는 도시락카페 수익금의 20%를 수수료로 받고 있다. 수수료는 도시락카페 운영비·인건비·법인세·부가세 등에 쓰이며 일부는 시장 발전기금으로도 쓰인다.

심 부장은 “가맹점이 엽전으로 판매하는 매출액의 20% 만큼은 시장 내에서 식자재를 구매하고 이를 영수증으로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취재과정에서 한 상인은 가맹점들이 실제로 식자재를 구매하는 곳은 주로 상인회장이 운영하고 있는 시장 내 마트라고 말하기도 했다.

도시락카페 이용객은 2012년 5만명을 시작으로 2013년 9만5000명, 2014년 17만2000명, 2015년 20만2000명이다. 심 부장에 따르면 이들 대부분이 외지에서 온 관광객이다.

78개 점포 중 24개 매장만 혜택…단골은 발길 돌려

점심시간 도시락카페 가맹 점포(위)와 비가맹 점포(아래)의 모습. ©중기이코노미

통인시장에서 대를 이어 청과점포를 운영하는 상인 최우석 대표는 “한 번 왔다가는 관광객 수는 늘고 있지만, 인근에 거주하는 단골 손님들이 찾는 비중은 점점 줄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말이면 도시락을 든 관광객으로 붐벼서 장을 보러 오는 손님은 불편을 호소한다고 했다.

생선판매를 하는 상인 박영순 씨는 “여기서 40년 넘게 장사했지만 올해같은 추석은 처음”이라며 “추석대목인데 올 추석매출은 예년의 1/3도 못미쳤다”고 밝혔다. 그는 “시장은 동네 장사를 하는 것인데 관광객으로 복잡하다는 소문이 돌아 단골들도 다른 시장으로 발길을 돌린다”고 말한다.

또 다른 생선판매 점포 상인 A씨는 “차라리 도시락카페 사업 안하고 사람들이 덜 찾아오는게 낫다”며 “사람은 북적북적 많은데 천장을 막아놔 더운 여름에도 공기가 빠져나가질 않는다”고 불편을 호소했다.

건어물 판매를 하는 상인 B씨는 기자가 엽전도시락카페 이야기를 꺼내자 “도시락카페가 시장 망쳐놨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도시락카페 시작이후 임대료를 두번이나 올렸다”며 “50년 가까이 여기서 장사했지만 이전에는 임대료 인상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B씨는 “전통시장 살린다는 말이나 하지 말지, 이게 무슨 전통시장 살리는거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가 상인회에 문제제기를 했냐고 묻자 “말해봐야 들어주질 않는다”며 “나이 든 사람들이 이제와서 무얼 어떻게 할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상인회 측에 따르면, 휴무였던 지난 추석 당일 하루를 제외하고 연휴기간 도시락카페 이용객은 하루 2000명이 넘었다. 도시락카페를 이용하지 않은 방문객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지않은 사람이 시장을 찾았다. 하지만 도시락카페 가맹점이 아닌 점포들은 오히려 관광객이 고객을 내쫒는다고 이처럼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다보니 가맹점이 아닌 상점 중 시장을 떠나는 상인들이 생겨났고 그 자리는 새로운 먹거리 점포로 빠르게 채워지고 있다.

상인 전체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 찾아야

도시락카페 가맹점도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지은선 씨는 “엽전단위에 맞춰 500원, 1000원 단위 반찬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엽전으로 판매하다보니 현금 순환도 잘 안되고, 매출액에서 20%는 수수료로 나가니 마진율은 도시락카페 운영 이전보다 더 낮아졌다”고 밝혔다. 지 씨는 식자재 중 일부를 시장 내에서 구입하도록 하는 것도 부담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도시락카페 운영시간이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인데 이 시간 외에는 시장에 사람이 별로 없어 도시락 매출에만 의존하게 된다는 점도 큰 문제로 꼽았다.

이에 대해 심 부장은 “갑자기 도시락카페가 유명세를 타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상인회에서도 가맹점이 아닌 상점들을 찾아다니며 도와드릴 부분은 없는지 의견수렴도 해봤지만, 현재로서는 뾰족한 대안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통인시장 상인회장이자 통인커뮤니티 대표이사를 겸하고 있는 정홍우 회장은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먹거리만 부각되고 있는 것은 모든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이 가지는 문제점”이라며 “도시락카페 비가맹 상점들이 매출을 올리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경제 전반의 침체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비가맹 상점 역시 시장 현대화사업 이전보다 만족스러울 만큼은 아니지만 사정이 좋아졌을 것”이라며 “가맹점들이 식자재 구매를 시장 내에서 하도록 유도하는 등 상생의 방안을 찾고 있다. 비가맹 상점에 초점을 맞춘 시장 활성화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