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의 녹색, 베스킨라빈스의 핑크, 이마트의 노란색…. 단순히 브랜드를 대표하는 색깔이라고 여길 수 있다. ‘이랑주VMD연구소’ 이랑주 대표는 “스타벅스 매장을 보면, 녹색이 인테리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도 안된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스타벅스를 녹색으로 기억한다. 비주얼 머천다이징(Visual Merchandising, VM)의 단적인 예다. 그렇다면 VM은 세련된 커피전문점이나 대형마트에는 어울리고, 전통시장과는 동떨어진 것일까? 소상공인을 위해 VM컨설팅을 하고 있는 이랑주 대표는 “효과적인 VM을 적용하면, 비주얼에 무심했던 전통시장도 주목받을 수 있다”고 단언한다.

‘이랑주VMD연구소’ 이랑주 대표.   ©중기이코노미

일례로 서울 노량진에서 유명한 것 중 하나가 여러 종류의 밥을 컵에 담아 파는 노점들이 모여있는 ‘컵밥거리’가 있다. 저렴한 가격과 맛에 반해 많은 사람이 이용하지만 좁은 길목에 노점들이 모여있어 외관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동작구는 지난해 이 컵밥거리를 ‘거리가게 특화거리’로 재단장했다. 이랑주 대표는 노점 매대의 높이는 어떻게 할지, 도로와의 거리는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등을 컨설팅하며 거리가게 특화거리를 함께 조성했다.

2006년 설립한 이랑주VMD연구소는 상품의 유통 전과정에서 시각적 요소를 반영해 연출하고 관리하는 VM전문연구소다. 1993년 이랜드에 입사한 이 대표는 2년 뒤 현대백화점으로 이직하면서 백화점의 집기·조명·제품전시 등 시각적인 모든 것을 어떻게 고급스럽게 백화점과 어울리게 보여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VM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랑주 대표에 따르면 VM은 ‘상품의 가치를 올리는 것, 제품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냥 무턱대고 제품을 던져놓는 것이 아니라 이왕이면 더 가치있어 보이게, 더 빛나 보이게 하는 것이 VM이다.

비주얼에 무심했던 전통시장…바꾸면 달라진다

이랑주VMD연구소는 중소기업청과 함께 전국의 시장을 돌아다니며 컨설팅을 진행했다. 다닌 곳을 꼽는 것보다 가지 않은 시장을 꼽는 것이 더 빠를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많은 곳을 찾았다. 이 대표는 좋은 물건들이 좋지 않게 보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전통시장 상인들은 이 부분을 놓치고 있었다.

간단한 작업을 통해 무분별하게 진열된 과일의 색감을 강조하고 보기 좋게 진열했다.(위) 특색없는 김치가게에 빨간색을 활용한 것만으로도 눈에 띄는 변화를 느낄 수 있다.(아래)<사진=이랑주VMD연구소>

“다들 자신이 가진 문제점을 알지만 실행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용기가 없었던 것이죠. 따라서 상인들에게 ‘하면 된다’, ‘도와 드리면 된다’고 믿음을 주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후 컨설팅을 진행하고 바뀐 것을 보면 다들 만족해 합니다. 그때 보람을 느끼죠”

이 대표는 “작은 것만 바꿔도 보이는 것이 다르다”고 말한다. 가령 생선가게의 경우 그저 일자로 전시해놨던 생선을 밑에 초록색 채소를 깔고 머리를 15도만 틀어 진열해도 생동감이 달라보인다. 사과를 진열할 때도 무턱대고 쌓아놓기 보다는 초록색 잎사귀를 하나 더하면 더 먹음직스럽다. 전통시장 역시 제품이 눈에 들어올 수 있도록 시각적인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 제품전시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카페를 예로 들어보자. 대기업이나 프랜차이즈 카페를 가면 보통 3000lux의 조명을 사용한다.

“3000lux는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해 줍니다. 반면 전통시장의 경우 4000lux 이상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조명은 손님을 매장에 머물지 못하게 합니다. 또 거울 앞의 경우 3500lux가 얼굴이 밝으면서도 피부를 좋게 보이는 조명입니다. 하지만 이를 모르고 어떤 전통시장의 카페는 6000lux 조명을 거울 앞에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손님을 끌고, 끌지 못하는 차이를 만듭니다”

이에 더해 이 대표는 전통시장의 조그만 점포라도 ‘주제색’을 가질 것을 제안했다. 스타벅스나 이마트처럼 주제색이 있으면 소비자들에게 더 강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생선가게라면 파란색, 과일가게라면 주황색, 떡집이라면 하얀색을 인테리어에 적극 활용해 점포를 인지시키는 것이다. 또 무턱대고 매대에 제품을 진열하기 보다는 집기를 활용해 깔끔함을 강조할 것도 조언했다.

미용실을 30년동안 운영하며 사용한 미용가위를 벽면에 장식해 미용실의 스토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했다.<사진=이랑주VMD연구소>

“매장은 온라인, 오프라인을 떠나 브랜드의 생각을 담는 그릇입니다. 매장에서 보이는 것이 곧 내 브랜드를 보여준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를 표현해야 전통시장의 경쟁력도 향상될 수 있다고 봅니다”

마트·백화점을 따라 할 수 없다면 전통시장 답게!

전통시장이 어려운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형마트, 종합쇼핑몰, SSM 거기에 온라인 쇼핑몰까지 다양한 판매채널이 등장하면서 전통시장을 찾는 사람이 점점 줄고 있다.

이 대표는 1년에 걸쳐 100년 이상된 세계 전통시장을 찾아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이들 시장이 무엇 때문에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다. 우선 국내 전통시장의 경우 스토리가 부족했다. 폴란드에는 550년이 된 크라코프 전통시장이 있다. 이 시장에서는 빵을 마차에 진열하고 빵을 파는 사람이 마부복장을 하고 있다. 과거 바쁜 사람들을 위해 빵을 마차에 싣고 팔던 전통을 그대로 콘텐츠로 활용한 것이다. 동네 소점포도 마찬가지다. 이 대표는 30년된 동네 미용실을 컨설팅하면서 사용하던 미용가위를 액자에 넣어 벽면을 장식했다. 미용실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하면서도, 30년동안 한 곳에서 미용실을 운영한 삶 자체가 하나의 스토리가 된 것이다.

“국내 전통시장들이 시설 면에서는 훌륭합니다. 하지만 현대화 시설만이 답은 아닙니다. 신설동 풍물시장에는 20~30년된 가죽장인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지금까지 가죽을 다루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스토리이자 콘텐츠입니다. 그런데 장인들이 만든 제품을 백화점에서나 쓰일 법한 고급 집기에 진열하고 있었는데, 무작정 마트처럼 백화점처럼 따라하는 것은 답이 아닙니다. 빈티지하다면 더욱 그것을 살리는 것이 특화된 콘텐츠라 할 수 있죠”

이랑주 대표는 “가치있는 제품을 더 가치있게 보이도록 하는 게 비주얼 머천다이징”이라고 소개했다.   ©중기이코노미

또 전통시장 스토리를 꼭 그안에서 찾을 필요는 없다. 영화세트를 접목한다던지, 60~70년대 분위기로 조성된 거리로 시장을 꾸미는 것도 시장에 어울리는 스토리를 찾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대형유통업체의 가격이나 서비스와 맞서서 전통시장이 버티기 힘들 겁니다. 최근엔 온라인 판매채널까지 가세하면서 전통시장이 더욱 살아남기 힘들어졌죠. 전통시장을 온라인 판매채널과 연계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대부분 연령대가 높은 전통시장 상인들이 온라인을 활용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폴란드 크라코프 시장은 그 옆에 유명한 소금광산 체험코스가 있습니다. 기존 관광지를 전통시장과 연계한 것처럼, 전통시장을 방문해야 접할 수 있는 콘텐츠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이 대표는 전통시장 컨설팅을 진행하며 상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질문을 모아 얼마전 ‘좋아보이는 것들의 비밀’이란 책을 냈다. 전통시장 상인들이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필요로 하는 다양한 정보를 공유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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