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전통적으로 독일이 어떻게 러시아 시장에서 강자의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는지 그 요인을 살펴보자.

러시아와 독일 양국은 정치인과 경제인 모두가 참여하는 ‘러-독 대화’(Dialog of Russia-Germany) 등 다양한 정부·민간 교류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월15일(현지시간)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제11차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 개회식에 앞서 리커창 중국 총리,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가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사진=뉴시스>

첫째, 서방-러시아간 지정학적 갈등과 대립에도 불구하고, 양국은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양국 정치인과 경제인 모두가 참여하는 ‘러-독 대화’(Dialog of Russia-Germany) 등 다양한 정부·민간 교류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민감한 대외 정치·외교 사안과는 별도로 경제·산업·통상·투자 부문 협력은 철저하게 비즈니스 원칙에 근거해 접근한다. 정부의 공식 입장에서 양국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못할 경우, 비공식적인 민간부문의 인적 자원을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특히 푸틴대통령은 구소련 시절 동독에서 첩보원으로 근무한 이력이 있고, 독일어를 능통하게 구사하는 등 상대국에 대한 이해도와 관심도가 높아 양국 간에 윈-윈(win-win) 할 수 있는 경제협력 과제들은 정치적으로 적극 후원하고 있다. 독일 역시 서방-러시아 갈등, 대러 제재, 미국의 간섭 등 대외적인 악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산 원유·가스 도입 비율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등 양국간 끈끈한 의리를 보여주고 있다.

둘째, 독일기업들은 러시아 현지화에 매우 적극적이다. 러시아에 진출한 독일기업 수는 무려 6000여개다. 러시아 비즈니스 종사자만 약 30만명이며 러시아 현지 생산공장이나 도소매, 부동산, 건설, 자원개발, 금융 등 다방면에 진출해 있다. 러시아에 진출한 한국기업 수가 대략 300개, 특히 현지공장 운영기업은 많아야 30여개에 불과한 우리와 사뭇 대조된다.

특히 눈여겨볼 것은 지멘스, 헨켈, 알리언츠, 폭스바겐 등 글로벌 대기업 뿐만 아니라 독일의 중견·중소기업들의 현지화 진출이 매우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비록 러시아의 경기부진과 대러 경제제재로 독일의 대러 직접 수출량은 일시적으로 줄었지만, 현지 진출한 독일기업들의 공동조달시장과 럭셔리(Luxury) 소비시장 점유율은 지속적으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독일의 대러시아 경제협력과 러시아 현지진출 현황

<자료=Frontiere>

셋째, 독일기업들은 매우 잘하고 한국기업들은 어려워하는 현지국 대정부 로비능력을 꼽을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러시아는 정부가 경제정책에 적극 개입하는 관행이 두드러진 나라로 정부기관이나 공기업들이 추진하는 공공조달시장 규모가 크다. 따라서 공공조달사업에서 낙찰기업으로 선정되거나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영업활동이 필요하다.

러시아 모스크바나 상트 뻬쩨르부르그 대도시에 자리잡고 있는 러시아 정부기관과 공기업들 건물 인근에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기업의 지사들이 촘촘히 들어차 있다. 러시아 최대 국영선사인 ‘솝콤플로트’사가 입주한 건물에도 골드만삭스, 도이치뱅크 등 재무적 투자자이자 대정부 로비스트들이 항상 ‘5분 대기조’ 처럼 정위치하고 있다. 현지 파견된 외국계 영업담당 임원들의 주요 업무는 한마디로 대관업무, 즉 러시아 정부 또는 공기업의 고위급 인사들과 호흡을 맞추고 애로사항을 들어주고, 비즈니스 정보를 교환하는 역할이다. 시즌별 이탈리아나 프랑스발 요트 여행에 동행한다든지, 주말에는 ‘다차’ 별장 사우나에서 보드카를 함께 마시거나, 가장 진귀한 명품 선물을 고르는데 골몰한다. 때론 007가방에 백만불짜리 현금 다발을 차곡차곡 담아야 할 필요성도 있다. 그래야 의사결정을 하는 핵심 이너서클(inner circle)에 진입할 수 있고, 대형 관급공사를 수주하거나 현지 애로사항을 해결할 수 있다.

입찰가격이 한국산 장비보다 30~50% 비싸도, 독일산이 채택되는 것은 바로 이런 대정부 로비능력을 빼놓고 설명하기 힘들다. 한국 지상사 임직원들이 현지에서 가용할 수 있는 영업비가 한국식당 초대나 자개 보석함 선물 정도로 제약이 많기 때문에, 수주금액 1% 정도는 언제든지 사전 영업비로 쓸 수 있고 멋진 수트에 최고급 차를 몰면서 뽐을 내는 독일 영업맨을 제압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어 보인다.

물론 독일 영업맨들이 항상 대관업무에만 열심인 것은 아니다. 그들은 로비활동 전에 팔고자 하는 제품시장을 분석하고,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 누구보다 철저하게 준비를 한다. 현지어 매뉴얼과 각종 인증은 기본이다. 타사 경쟁력 분석, 완벽한 입찰서류, 영업대상에 대한 철저한 신상정보 분석 등 빈틈없이 사전에 준비작업을 한다. 따라서, 단순히 그들의 대관업무 관행이나 영업지원책을 부러워할 것만은 아니다. 비즈니스를 성공하기 위해 제품과 시장을 철두철미하게 조사하고 준비하는 독일 영업맨들의 자세를 먼저 배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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