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민 한국사진문화연구소 연구원, 미술평론가

사진이 당당히 예술로 인정받는 오늘날도 사진의 대상 지향성은 작가들에겐 커다란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언제까지나 한 종류의 대상만을 작업의 대상으로 삼기란 불가능한 탓이다. 실제로 소재 의존적인 작가들이 새로운 작업으로의 방향 전환에 실패해 도태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그래서 꾸준하게 사진 작업을 펼쳐나가며 작가로 살아남은 작가라면 그 사실만으로도 인정받아 마땅하다. 이런 점에서 김옥선은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주변을 꼼꼼하게 살피고 기록해온 작가로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중심과 주변의 간극을 탐구해 왔다. 그리고 그 노력은 올해 그에게 동강사진상이라는 결과로 나타났고, 지금은 그간의 작업을 돌아볼 수 있는 전시 <중간보고서 2016-순수 박물관>을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열고 있다.

Hamel’s Boat dawn the dreamer, 2008

타자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방인들에 대한 관심

김옥선의 작업은 줄곧 자기 주변을 톺아보는 일로부터 시작해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사회적 맥락과 맞닿는 부분을 탐구해 왔다. 스스로 여성인 작가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독립하거나 결혼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방안의 여자>를 통해 살펴봤고, 독일 남성과 결혼한 자신의 경험을 통해 국제결혼의 현실적 갈등과 문제의식을 <해피 투게더>를 통해 드러냈다. 이처럼 그는 개인적 경험을 사회적 현실로 확장시키며 자신의 작업 세계를 구축해 왔다.

섣불리 사회적 문제의식을 곧장 사진으로 표현하려 했던 기존의 많은 작업들과 달리, 그의 이러한 접근 방식은 작업의 진정성을 담보해 주었고 작가의 작업 세계가 꾸준한 연속성을 가질 수 있게 했다. 자신의 삶이 세계와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 살펴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이야기와 작업 대상이 결정될 수 있었을 것이며, 그 가운데 특히 자신이 주목하는 문제의식이 어떤 것인지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Happy Together hiroko and ken1, 2004

여성이자 국제결혼을 한 자신이 처한 주변인으로서의 삶은 자연스럽게 이 사회의 중심이 아닌 주변, 그리고 타자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방인들에 대한 관심으로도 나타났다. 특히 제주로의 이주는 중심과 주변이라는 문제의식을 더욱 깊이 탐구하도록 만든 계기로 보인다. 평생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왔을 제주 사람들에게 뭍에서 건너온 작가는 아마도 관광객으로 비쳤을 것이 뻔하다. 오랜 시간 제주에 정주하며 이제는 그런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졌겠으나, 그가 얼마간은 분명 이방인의 삶을 살았을 것이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과 성찰은 제주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담은 <함일의 배(Hamel’s Boat)>와 <노 디렉션 홈>으로 구체화 되었다.

무엇보다 그는 작업을 위해 이들이 제주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함일의 배>)와 실제로 거주하는 장소(<노 디렉션 홈>)를 배경으로 선택했다. 이곳과 어울리지 않고, 이곳 사람이 아닌 모습을 한 그들이지만, 그들의 가장 내밀하며 사적인 공간들은 그들이 제주를 삶의 터전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역설했다. 다시 말해 그들을 이방인으로 만든 것은 오히려 사람들의 오랜 선입견일 수도 있는 것이다.

The Shining Things Untitled_hogeun485, 2014

그런데 최근 그는 엉뚱하게도 제주의 나무와 숲을 사진으로 재현한 작업을 선보였다. 지금까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사유를 전달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변화이기에 그의 관심이 달라진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한다. 하지만 이 역시 대상만 달라졌을 뿐 그의 관심이 다른 대상으로 확장된 것이라는 사실은 금세 파악된다. 얼핏 다양한 식물들의 사진을 촬영한 식물도감같이 보일 수도 있지만, 그의 작업들에 등장하는 식물들은 모두 제주에 이식된 외래종 나무와 숲이다.

각자의 사정에 따라 제주로 들어와 뿌리를 내리고 살기 시작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작가는 이 식물들 역시 같은 태도로 바라보고 재현한 것이다. 따라서 그가 이 식물들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제주도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종려나무 또한 처음부터 제주에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실은 언젠가부터 제주땅에 심어지기 시작해 이제는 원래 제주에 있었던 것 마냥 존재하게 된 것이라고 그의 사진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문제의식에 집중하기는 쉽지만, 그것을 다양한 대상을 통해 시각화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특히 대상지향성이 강한 사진을 통해 한 가지 문제를 파고든다는 것은 여간 혹독한 과정이 아니다. 하지만 김옥선은 자기 삶을 예민한 감각으로 들여다봄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왔다. 섣부르게 대상을 통해 은유하거나 그것에 개념을 부여하기보다 자신의 주변을 먼저 돌아보는 일로부터 모든 작업을 시작해 온 것이다. 그의 삶이 앞으로 무엇을 주목하게될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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