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육연구소 안호덕 객원연구원

개천에서 용 난다는 신화는 깨어진지 오래다. 개천에서 용이 나도 개천의 용일뿐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도 있다. 사법고시 폐지와 로스쿨의 도입은 법조인의 자격에 금력의 하한선을 부여했다. 수천만원 이상되는 로스쿨 등록금을 부담할 수 있는 여력은 법조인이 될 수 있는 최소조건인 셈이다. 특목고, 외고, 자사고는 또 어떤가? 학교의 목적과 상관없이 ‘빽’있는 집, 돈있는 집 아이들의 대학 창구로 전락했다.

빈부 간극이 점점 더 커지고 공고해졌다.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국민 10명 중 8명은 계층이동 가능성에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금수저, 흙수저론’은 단순한 자격지심이나 자기 비하가 아니다. 아버지의 권력이 나의 권력이 되고, 부모의 금력이 자식의 스펙이 되는 세상. 다른 한편에서는 비정규직 자식들이 또다시 비정규직 일자리에 줄을 서야하는 가난의 대물림이 이어지고 있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걷어 찬 사회. 안타까운 죽음이 계속되는 건 현실의 고달픔보다 희망의 상실 때문일 것이다.

편법을 동원해 잇속을 챙긴 권력, 정부와 관제데모에 뒷돈대는 자본…. 권력과 자본의 기득권 챙기기는 도를 넘었고, 사회불평등을 치유해야 할 정부는 그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고착화된 저임금과 손쉬운 해고. 계층 이동의 사다리마저 찾기 힘든 현실에서 결혼·출산이 사치로 여겨지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청년의 삶이 붕괴되고 비정규직 가정이 해체되는 건 그들만의 재앙이 아니다. 청년들을 저임금으로 내몰고, 노동임금으로 가정을 지탱할 수 없다면 자본과 권력인들 그리 오래 가겠는가, 국가인들 성장 동력을 추동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문제는 분배와 정의다. 노력한 만큼 벌 수 있고 권력자와 시민이 같은 무게를 저울질되는 세상. 이 평범한 욕심을 정부는 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가둬왔다.

불경기가 이어지고 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저성장기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더 이상 개발 시대와 같은 고도성장은 힘들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불경기나 저성장은 저임금과 손쉬운 해고만으로 벗어나기 힘들다. 이럴 때 일수록 공존의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대통령은 연일 노조에게 기득권을 내어 놓으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일부 노조의 기득권을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우선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할 사람들은 자본과 권력을 쥔 사람들이다. 온갖 편법을 동원해 아들을 최고의 보직에 앉혀 놓을 수 있는 권력, 1.4% 초저금리로 집값 4억5000만원을 대출받을 수 있는 권력, 수십억원씩 갹출해 정부주도의 신생재단에 기부하는 자본, 수억원 뒷돈을 대서 관제데모를 조종하는 자본…. 이런 자본과 권력이 기득권을 내려놓는 게 우선이다.

불경기와 혼란스러운 정치, 모든 것이 박근혜 대통령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분배의 원칙이 무너지고 권력과 자본의 기득권 챙기기는 도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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