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가지고 있는 막강한 권한 중 하나가 전속고발권이다. 전속고발권은 공정거래법, 하도급법, 대규모유통업법, 가맹사업법, 소비자보호관련법 등 공정거래법 관련 사건에 대해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의 공소제기(기소)가 가능하도록 한 제도다. 이런 권한을 공정위 스스로 무색케 함으로써 국회에서는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71조 제1항에는 ‘제66조 및 제67조의 죄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이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제66조의 벌칙 내용을 보면 ▲시장지배적지위 남용금지 규정 위반 ▲기업결합의 제한 위반 ▲지주회사 등의 행위제한 위반 ▲상호출자 금지 위반 ▲탈법행위 금지 규정 위반 ▲부당 공동행위 금지 규정 등을 위반한 한 자에게 3년 이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또 제67조의 벌칙에 따르면 ▲불공정거래행위 금지 규정 위반 ▲사업자단체 금지행위 규정 위반 ▲재판매가격 유지행위 제한 규정 위반 ▲시정조치 또는 금지명령에 응하지 않은 자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등의 지정 규정 등을 위반한 자에게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2000년 이후 연평균 고발률 0.9% 불과

20대 국회에서 공정위 관련 쟁점 중 하나가 전속고발권의 폐지다. 공정위의 ‘2015년 통계연보’를 보면, 2015년 공정위가 처리한 사건 수는 4367건이다. 이 가운데 고발로 이어진 건수는 56건이며, 전체 처리 사건의 1.2%에 불과하다. 1706건이 무혐의, 심의절차종료, 조사중지, 종결처리, 재결로 마무리 됐으며 1220건은 자진시정 조치였다.

<자료=공정거래위원회>   ©중기이코노미

고발률이 지난해만 유독 적었던 것도 아니다. 2000년부터 2015년까지 공정위에 접수된 사건 건수는 모두 6만4107건으로 연평균 3713건이며, 고발건수는 연평균 35.25건이다. 2000년 이후 연평균 고발률이 0.9%밖에 되지 않는다. 공정위가 가장 많은 고발건수를 기록했던 해는 2014년으로 65건이며, 2002년엔 단 11건에 불과했다. 공정위 스스로 전속고발권을 포기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공정위 내부에서도 고발기준 완화하자는 의견 있어”

이와관련 국회입법조사처 한 관계자는 10일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공정위가 부과하는 과징금이 몇 억원에서 많게는 몇 천억원까지 나오는데, 형사고발을 통해 검찰로 넘어가면 이만큼의 과징금이 나오지 않는다”며 “공정위는 과징금이 많은 게 더 실효성이 있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또 “공정위가 검찰에 고발하는 건은 사회적인 이슈화가 필요하거나 임원급들에 대한 형사처벌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성격이 강하다”며 “공정위에 사건을 접수하는 피해자들도 위반행위를 중지시키는 효과를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전속고발권을 소극적으로 행사한다는 비난이 많아 공정위 내부에서도 고발기준을 완화하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공정위가 전속고발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불공정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주고, 재량권을 남용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다. 공정거래 사건의 피해자가 직접 사건을 고소하지 못함으로써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와 재판절차상의 진술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또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의 피해자와 일반범죄 피해자 간의 차별대우로 헌법상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형사처벌에 대한 판단이 공정위와 검찰이 다를 수 있다”며 “전속고발권 제도하에서는 공정위가 판단기준을 독점하고, 그 기준이 일관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외부적 감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고 밝혔다.

중기청 조달청 감사원의 의무고발요청제도 실효성 있나

이에따라 2013년 7월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중소기업청, 조달청, 감사원까지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할 수 있도록 확대했다. 공정위가 이들 기관의 요청을 받으면 의무적으로 검찰에 고발해야 하는 ‘의무고발요청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동법 제71조 제4항은 ‘사회적 파급효과, 국가재정에 끼친 영향, 중소기업에 미친 피해 정도 등 다른 사정을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을 요청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단 동법 제19조 제1항의 부당한 공동행위의 경우 적발이 쉽지 않고 자진신고의 유인과 적발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자진신고자에 대해서는 고발하지 않도록 했다.

의무고발요청제도 도입에도 중기청 등 관련기관들이 전담조직과 예산부족 등을 이유로 이를 활용한 경우는 거의 없다. 지난해 9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식 의원에 따르면 2014년 1월부터 2015년 9월까지 의무고발요청건수는 중기청이 8건, 조달청 1건, 감사원은 단 한건도 없어 총 9건이다.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에 따르면, 중기청의 경우 2015년 9월부터 현재까지 전체 고발건수는 9건으로 1년 사이 1건 더 고발을 요청했을 뿐이다. 중기청이 2014년 1월 이후 현재까지 검토완료한 사건 135건 중 고발요청으로 이어진 사건은 9건, 6.6%에 그쳤다. 불공정행위의 피해 당사자가 주로 중소기업, 소상공인임에도 이들을 보호·육성해야 할 부서가 이 정도라면 의무고발요청제도 역시 사문화된 제도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중기청은 지난해 5월 의무고발 담당인력을 종전 3명에서 3명을 추가로 확충했다. 2014년 1월1일부터 인력보강 직후인 2015년 7월까지 공정거래 위반에 따른 구제신청 접수 건수는 109건이고, 이중 처리 건수는 68건이다. 이후 현재까지 접수된 건수는 95건, 처리 건수는 67건이다. 2015년 7월까지 월 1인당 1.3건, 2015년 7월 이후 현재까지 1.2건이다. 인력은 2배가 늘었지만 처리 건수는 변함이 없다는 점에서 담당인력을 증원한 이유 자체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또 올 9월 기준 현재 중기청이 의무고발을 검토 중인 사건 62건 중에서도 이미 57건은 60일 이내 고발 처리 규정을 넘겼다. 3개월 이상 6개월 미만 경과한 사건은 20건, 6개월 이상 1년 미만 경과한 사건은 22건이었고 접수 이후 1년이 경과한 사건도 무려 15건에 이른다.

이에대해 중기청 동반성장지원과 장희양 주무관은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접수된 사건 모두 고발해야 할 건은 아니다”라며 “접수된 사건 중 피해를 본 중소기업 수와 업체당 피해규모, 위반행위의 경중, 사회적 파급효과 등을 고려해 고발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사건에 대해서만 고발조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주무관은 “고발이라는 것이 형사처벌로 이어지기 때문에, 단순히 위반했다고 고발로 이어갈 수 없다”며 “대부분 피해가 경미하고 사회적 파급효과가 적다. 고발을 남발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했다.

<자료=국회>   ©중기이코노미

20대 국회 전속고발권 폐지·축소 움직임

20대 국회는 전속고발권을 축소 또는 폐지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국민의당 채이배 의원안은 공정거래법 제66조 제1항 중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제1호)과 기업결합의 제한 규정 위반(제2호)을 제외한 나머지 벌칙에 대해서만 공정위가 전속고발권을 행사하도록 했다. 더불어민주당 최운열 의원안은 아예 제71조 1항을 삭제, 전속고발권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다.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채이배 의원안에서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을 제외한 것은 대부분 대기업인 독과점 사업자에 대해 공정위만 고발권을 가지고 있다면 오히려 대기업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확대한 것”이며 “기업결합은 기본적으로 형사처벌까지 할 정도는 아니고, 고발건수도 적다. 또 사전적 규제를 통해서 제어해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전속고발권을 축소 또는 폐지할 경우 피해자가 직접 검찰에 고소할 수 있지만 공정거래법상 폭넓게 규정돼 있는 형벌적용 대상으로 인해 기업활동이 위축된다는 우려가 있다. 공정거래법 적용대상은 사업자, 지주회사, 자회사, 손자회사, 기업집단, 계열회사, 사업자 단체, 임원 등 사실상 모든 기업이 해당한다.

전속고발권 폐지를 주장하는 이유로 압수·수색 등 강제적 수단에 의한 수사가 가능한 검찰이 나서는 것이 더 실효성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많은 국가에서 형사처벌 대상이 되고 있는 부당공동행위의 경우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증거확보를 통한 ‘합의’사실 입증이 매우 중요하고, 경쟁제한 효과분석 등과 같은 전문적 판단에 따른 위법성 입증을 요구하지 않기에 오히려 검찰 수사를 통한 제재가 유리하다는 것이다. 공정위 조사의 경우 조사대상자의 임의적 동의·협조를 요구하며, 조사에 불응하는 경우 강제력을 행사할 수 없고 과태료 부과나 형사처벌 등 간접적인 방법만이 가능하다.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전속고발권을 완전 폐지하는 것은 장단점이 있다”며 “고소를 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는 것은 긍정적이다. 그렇지만 공정위가 행정제재권을 갖고 이와 함께 형사처벌이 늘어나면 기업에는 중복제재가 돼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중기이코노미는 ▲신청건수 대비 고발률이 낮은 이유 ▲미고발시 결과적으로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전속고발권의 문제점 ▲20대 국회 전속고발권 개정 및 폐지법안에 대한 입장 등을 듣기 위해 공정위 담당자에게 취재를 거듭 요청했으나, “신청사건에 대한 내부 고발기준이 있다”는 답변만 들었다. 또 “국감 일정으로 일일이 답변하기 어려우니 필요하면 대변인실을 통해서 일정을 잡아 줄 것”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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