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일가의 사익편취를 막기 위한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헛돌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제도가 실효성을 얻으려면 지분율 규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11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5대 그룹 계열사 318개 중 내부거래 비중이 90%가 넘는 56개 기업 중 규제 대상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내부거래 비중이 30~90%인 110개 기업 중 규제 대상은 LG와 SK, 롯데정보통신 세 곳에 불과했다.

지주사인 LG와 SK의 총수일가 지분율은 각각 31.5%와 30.6%다. 롯데정보통신은 내부거래비중이 86%가 넘지만 총수일가 지분율이 20% 미만이라 그간 규제 대상에서 빠져 있었으나, 최근 검찰 조사 과정에서 덜미가 붙잡혔다. 스위스 소재 페이퍼컴퍼니인 로베스트AG(지분율 10.5%)가 신격호 총괄회장의 명의신탁으로 확인되면서다. 

그러나 총수일가 지분율을 조금만 조정하면 이들 기업도 규제 대상에서 빠질 수 있다는 것이 제 의원의 주장이다. LG와 SK는 친인척 지분 일부만 매각하면 규제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따. 롯데정보통신도 지분 일부를 팔아 20% 미만으로 맞추거나, 상장을 하면 지분율 요건이 30%로 올라가므로 규제 대상에서 빠질 수 있다.

일감몰아주기 규제란 내부거래금액이 200억원 이상이고 내부거래 비중이 12% 이상인 기업 중 총수일가 지분이 일정비율 이상인 기업에 증여세를 부과하는 제도다. 상장사는 총수일가 지분이 30%, 비상장사는 20%를 초과하는 경우 규제 대상이다. 2014년부터 시행되고 있으나 법 시행을 앞두고 대기업들이 규제를 피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을 세우며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제 의원에 따르면 5대 그룹 318개 계열사 중 내부거래 비중이 30%를 넘는 기업은 166개로 전체 계열사의 절반이 넘는다. LG가 44개로 가장 많고 SK가 33개, 삼성은 32개, 롯데는 32개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도 불구, 5대 그룹에서 내부거래 비중이 30%가 넘는 기업의 수는 지난해보다 11개가 늘었다. 

공정거래법상 일감몰아주기 규제는 총수일가 직접 지분율을 기준으로 하므로, 내부거래 비중이 높아도 총수일가 지분율만 조정하면 공정당국이 제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아니라 ‘가이드라인’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근거다.

제 의원은 “현행 규제 방식은 사실상 재벌들에게 마음 놓고 일감몰아주기를 하라는 면죄부에 불과하다”면서 “편법적인 부의 이전을 막고 내부거래를 줄이기 위해서는 규제대상 지분 요건을 상장사도 20%로 낮추고, 간접지분도 포함해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감몰아주기 규제 이후 대기업 내부거래가 늘어났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날 정무위 소속 김성원 새누리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대기업집단 소속 기업 한곳당 평균 내부거래금액은 605억원으로, 전년 대비 22%가 증가했다. 

김 의원은 “거래 비용을 줄여 효율을 높이기 위한 내부거래는 정당하나 사적이익을 위한 내부거래, 일감 몰아주기는 엄연한 불법행위”라며 “공정위는 감시와 제재를 강화해 대기업 총수 일가가 계열사 간 일감몰아주기로 부당하게 사적이익을 얻는 것을 걸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도 최근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하자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채 의원은 개정안에서 “상장사 지분율 30%는 기준이 너무 높아 규제 대상이 협소하다. 상장사 30%, 비상장사 20%로 차등규제할 합리적인 이유도 없다”며 총수일가 지분율 규제를 20%로 단일화할 것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