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부 부처들이 앞다퉈 발표하는 ‘규제개혁’ 속도전에 현기증을 느끼는 것은 나 혼자가 아닐 듯싶다. 길게는 수십년 시행돼 온 제도들을 단 몇 주만에 뚝딱 갈아엎는 현실이 신기하면서도 불안하다.
나같은 장삼이사에게 대부분 규제는 다양한 가치들이 벌인 싸움판의 전리품이다. 이들 가치들을 최선 혹은 차악의 방식으로 줄세우기 시킨 결과물이 규제일텐데, 이 가치체계가 하루아침에 뒤바뀌는 것이 놀라울 수밖에 없다. 규제개혁마다 발표 주체들이 내놓는 논리적 근거 뒤에 가치의 왜곡이 숨어있지는 않을까 의구심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자칫 풍선효과라도 나서, 재주는 곰이 부리고 재미는 여우가 보는 꼴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끝장토론’에서 주문한 내용은 의미가 깊다. 대통령은 “공정거래, 사회적 약자, 환경 등을 보호하는 규제는 강화가 필요할 수도 있으니, 일괄적으로 규제의 수를 줄이려는 획일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암 고친다고 섣불리 정상세포까지 손대지 말고, 빈대 잡는다고 초가삼간 태우지 말 것”을 주문한 셈이다.
환경부가 3일 발표한 환경 규제개혁 추진방안은 ‘통 큰 개혁’이다. 등록된 전체 규제의 50%를 대통령 임기 중 일몰제를 적용하라는 국무조정실의 ‘권고치’를 넘어서, 2016년까지 75%에 대해 일몰제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규제 부처’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행보다. 75%라니… 그 짧은 기간에 모든 환경 관련 규제에 대한 비용과 편익 계산을 마무리했을 리 없다면, 그동안 환경부는 대부분의 규제를 혁파의 대상으로 봐 왔다는 말로 들릴 수도 있다.
자가당착도 보인다. ‘먹는물보다 강한 원폐수의 유해물질 배출기준’을 낡은 기준으로 든 것이 대표적이다. 그대로만 읽자면 무릎을 칠 ‘암덩어리 규제’다. “사람이 마시는 물보다 엄격한 기준을 그깟 폐수에 적용하다니…” 그러나 앞뒤를 이어붙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 매체가 이 규제가 과도하다는 보도를 낸 적이 있다. 환경부는 즉시 “특정 수질유해물질은 미량으로도 인체 및 수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커 상수원 상류 일정 지역에 대해서 원폐수 기준의 입지 규제가 필요하다”는 반박자료를 냈다. 특히 구리는 먹는물 기준이 1ppm이지만, 극미량(0.003~0.008ppm)에서도 플랑크톤, 치어류가 치사에 이를 수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먹는물 기준의 백분의 일만 섞여도 생태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불과 70일 전이다. 환경부가 규제개혁의 방법론으로 제시한 ‘과학기술의 진보’가 70일만에 새로운 여과방법을 개발해 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폐기물 재활용을 ‘포지티브’에서 ‘네거티브’로 전환하는 기조는 특히 중소기업계에서 환영할만한 사안이다. 환경부는 올 8월 폐기물관리법 개정안 제출을 목표로 방안마련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 구체적인 기준과 지침을 위한 연구용역은 올 3월 시작돼 내년 3월에 마무리된다. 앞뒤가 바뀌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자원재활용과 사무관은 “우리가 알아서 한다”고 짧게 답했다. 법안은 처리에 긴 시간이 소요되니 용역사업을 내년 3월까지 마무리해도 시행령·규칙 반영에 늦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의구심이 사라진 건 아니다. 짧은 기간에 연구용역을 시작한 것도 놀라운데 연구설계, 발주, 시행, 검수, 검토, 오류 수정, 정책 반영 등의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돼야 한다면 더더욱이다.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연구설계만이라도 균형을 잃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환경부가 다루는 규제들은 공정위, 고용부, 중기청 등이 다루는 이른바 ‘착한’ 규제들에 비해 유독 불가역성이 강하다. 불특정 다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지구와 뒷세대 사람들에게까지 빚을 질 수 있다. 규제개혁이라는 선의의 정책이 현장 공무원들을 강박이나 조급증으로 몰아넣는 ‘또 하나의 규제’가 돼서는 곤란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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