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연봉제 도입 여부를 둘러싼 노사정간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파업중인 공공·금융노조에 대해 박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성과연봉제 도입을 촉구했다. 12일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나쁜 사람’이란 박근혜 대통령의 한마디에 한직으로 밀려나더니 3년 만에 다시 ‘이 사람이 아직도 있어요?’라는 대통령의 추가 물음에 2급 고위직 공무원이 공직에서 쫓겨났다. 다른 대통령과 달리 박 대통령 발언의 무게는 이 정도다. 대통령의 하명까지 떨어졌으니 정부의 압박 강도는 거셀 것이고 공공·금융노조는 머리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백기 투항할 명분 찾기도 쉽지 않고, 턱 밑까지 다가온 태풍을 그대로 맞자니 그것도 고민이다. 지금으로선 필사즉생(必死卽生)의 각오 외에 달리 방법이 없어 보인다.

성과연봉제, 성과와 연봉을 연계하겠다는 것인데, 일 잘하면(성과가 높으면) 돈을 많이 주고 적게 하면 적게 준다. 틀린 구석이 하나도 없는 말이다. 성과연봉제는 임금의 결정기준을 성과로 보는 임금체계로서 구성원들에 대한 동기부여 수단이다. 성과연봉제의 기능은 보상에 차등을 둠으로써 구성원을 독려, 궁극적으로 조직의 성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본말이 전도됐다. 언제부턴가 정부가 추진하는 성과연봉제 도입은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됐다. 조직의 특성, 업무의 성격과 관계없이 모든 공공기관(기업)과 금융기관(기업)이 사실상 동일한 내용의 성과연봉제 도입을 강요받고 있다. 

공적서비스를 보다 효율적으로 넓게 제공함으로써 공공기관(기업)의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또 금융기관 특히 사기업인 시중은행은 많은 돈을 벌어 주주들에게 보다 많은 배당을, 종업원들에게 보다 많은 월급을 주면 된다. 손톱만큼 정도 부담했던 금융의 공공성을 박탈한 당사자는 정부다. 김대중 정권도 노무현 정권도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 성과연봉제를 추진하는 가장 큰 명분으로 정부는 공공·금융부문의 개혁을 내세운다. 정부가 주장하는 개혁의 내용도 알 수 없고, 개혁과 성과연봉제에 무슨 연결고리가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공공부문에 최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개혁은 낙하산, 즉 관피아 근절이다. 조인근 전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 은 지난 8월 3억원의 연봉을 받는 한국증권금융 감사위원에 선임됐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했다가 떨어졌던 정찬우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한국거래소 이사장에 취임한게 지난 9월이다. 국민의당 채이배 의원이 금융 공기업 27곳을 분석한 결과, 전체 임원 10명 중 4명(255명 중 97명)이 낙하산이다. 또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에 따르면,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연구기관 23곳 중 11곳이 낙하산 인사다. 새누리당 대선캠프 출신, 뉴라이트 출신, 자유총연맹 출신 등인 이들 인사들은 낙하산 착지 기관의 업무에 대해 문외한이다. 공공부문 고유의 기능에도 관심이 없고 업무 전문성도 없는 이들이 자리를 꿰차고 앉아 공공부문을 사유화했다. 개혁의 대상자가 개혁을 하겠다고 칼을 들고 망나니 춤을 추고 있는 꼴이다.

올초 금융권 실적발표에 따르면 신한금융은 지난해 2조3722억원의 순이익을 올려 2년 연속 2조원 시대를 열었다. 이어 KB금융 1조6983억원, 우리은행 1조593억원 그리고 기업은행 1조1506억원 순이었다. KEB하나금융만 1조원 돌파에 실패해 9368억원을 기록했다. 신한·KB국민·우리·KEB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은 주주배당에도 씀씀이가 커 현금배당금만 2013년 9307억원에서 지난해 1조7871억원으로 늘었다. 배당시즌마다 불거지는 국부유출 논란은 이제 논쟁거리도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에 따르면 올해 시중은행이 연간 가계대출 증가액 목표치를 26조3000억원으로 잡았지만 상반기에 벌써 19조3000억원을 달성했다. 6개월 만에 목표 달성률이 73.4%다. 가계부채 급증에 놀란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10일 “가계대출 증가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금융회사는 건전성과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금융감독원이 특별점검을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가계대출 영업을 자제하란 얘기다. 박 대통령은 은행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해 성과를 내라고 요구하는 반면 금융위 임 위원장은 성과를 내지 말하고 막고 있는 셈이다. 

금융기관의 당면 개혁과제는 금융의 공공성을 복원하는 것이지, 성과연봉제를 도입해 은행 수익 극대화와 함께 가계부채를 늘리는 것이 아니다. 계좌유지수수료 신설, 기존 수수료 인상 등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수익을 극대화한 후 외국인들에게 통 큰 선심을 쓰지 말라는 얘기다. 성과연봉제 도입으로 공공·금융부문을 개혁하겠다는 등의 억지주장을 내려 놓고, 정부는 공공·금융의 공공성을 복원하는데 매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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