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 명료하다. 가계부채가 급증해 가계파산이 우려된다고 ‘아우성’이니 대출을 규제하자. 대출의 내용과 성격도, 누가 대출을 받고 있는지 관심도 없다. 생각없이 결정한 대출규제에 따른 서민들의 애로 역시 관심 밖이다. 우리나라 금융당국의 정책결정 메카니즘이다.

한국주택금융공사는 지난 14일 보금자리론 대출 자격 및 요건을 까다롭게 변경했다. 변경안을 보면 보금자리론을 받을 수 있는 주택가격을 9억원에서 3억원 이하로, 대출 한도 역시 5억원에서 1억원 이하로 내렸다. 또 대출자금 용도도 주택 구매로만 한정했다. 보전이나 상환용도 대출을 금지했다. 소득 심사기준도 신설, 부부합산 6000만원 이하 소득자만 신청하도록 했다. 보금자리론은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정부가 지원하는 정책금융 상품으로 10~30년간 원리금을 나눠서 갚도록 한 장기 주택담보대출이다. 대출금리는 현재 연 2.5%(10년)~2.75%(30년)로 시중은행보다 낮고 상황기간도 길어 서민들이 많이 활용하는 담보대출이다. 주택금융공사는 19일부터 올해 연말까지 강화된 대출요건을 적용한다. 

갑작스런 대출요건 강화로 서민피해 주장이 제기되고 여론도 악화되자, 주택금융공사는 지난 16일과 17일 이틀 연속 해명자료를 통해 ‘연간목표 10조원을 초과해 취해진 불가피한 조치’이고 ‘보금자리론 이용자 중 56.6%는 3억원 이하 주택 구입자로 연소득 6000만원 이하’라고 설명했다. 실질적인 서민피해는 많지 않을 것이란 주장이다. 주택금융공사의 이같은 입장은 정부의 방침과도 일치한다. 17일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도 “원래 요건을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본다”며 “이미 목표를 넘어섰으니 (요건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18일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답변을 통해 “보금자리론 대출요건을 축소한 것은 서민들에게 그 여력을 더 집중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가계부채가 급증하게 된 가장 큰 주범이 주택담보대출이라는 점에서 연간목표 10조원을 이미 채웠으니 대출요건을 강화하겠다는 방향 그 자체는 맞다. 대출요건인 주택가격 기준 9억원과 대출한도 5억원, 서민의 입장에선 언감생심 큰 돈이다. 특히 보금자리론 이용자 중 56.6%는 3억원 이하라는 점에서 ‘서민 피해’ 주장은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문제가 되는 것은 ‘불통’이다.

수요와 공급 측면을 제외하면 시장 붕괴의 가장 큰 원인은 ‘불확실성’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수요와 공급이 시장원리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데 예측불가한 불확실성이 개입하면 시장의 기능은 마비된다. 정부의 일관성없는 정책 또한 다르지 않다. 행정서비스 수요자인 국민이 예측불가한 정부정책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 정부를 불신하고 종국적으로 행정은 마비될 수밖에 없다. 신뢰보호 원칙에 반한 행정행위가 무효라는 행정의 대원칙은 정부정책의 일관성을 통해 정부를 신뢰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어제는 9억원·5억원이고 오늘은 3억원·1억원이라면 전자를 믿은 국민이 감수해야 하는 불이익은 정부책임이다. 더욱이 부부합산 소득 6000만원이란 추가 조건은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가. 

정책의 변경은 사전에 공지하고 충분한 의견수렴을 통해서 합리적인 수준으로 결정돼야 형식과 내용에 있어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번 보금자리론 사태는 국민을 존중과 배려의 대상으로 보지않고 지시와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전근대주의적 관료주의를 민낯으로 보여준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목적과 당위성만을 주장하며 ‘이렇게 하자’ 이건 아니란 얘기다. ‘불통’을 정부의 정책기조로 가져갈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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