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와?” “진짜 진짜 좋아해” “나 느껴봐” “고마워요 엄마씨”…다섯살배기 아이가 던진 말들을 뱃지에 새겨 넣어 아트상품을 만들었다. 형형색색의 뱃지에 적힌 사랑스러운 말들은 보는 이의 기분마저 좋게 만든다. 가격은 1000원. 뱃지 옆에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현재까지의 육아일지도 적혀있다. 작품명은 ‘시 뱉는 아이’다.

전시장 한편에는 노란 빛깔의 고급스러운 가방이 눈에 띈다. 명품가방 디자인을 똑 닮았다. 내부도 제법 탄탄하다. 알고 보니 이 가방은 전통시장에 있던 노란색 민속장판 바닥재로 만든 것이란다. 한국사회의 병적인 소비성향을 꼬집어 온 ‘이웃상회’ 작가의 작품이다. 

예술가들이 직접 만든 작품을 들고 거리에 나왔다. 장신구, 브로치, 에코백, 휴대폰 케이스, 포스터 등 종류도 다양하다. 21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되는 서울시립미술관의 ‘세마 창고 쇼케이스’다. 장터는 서울 불광동 서울혁신센터에 자리한 세마 창고다. 질병관리본부가 시약창고로 사용하던 건물을 서울시가 예술가를 위한 대안공간으로 만들었다.

예술가들의 작품을 기반으로 기업이 상품을 만드는 ‘아트 콜라보레이션’이 새로운 일은 아니다. 이번 세마 창고는 보다 예술적인 성격이 강하다. 작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의 연장선에서 아트상품을 제작했다는점에서다. 작가가 퍼포먼스에 사용했던 도구를 아트상품으로 개발한 경우도 있고, 자신의 얼굴 모양을 빵으로 구워서 파는 작가도 있다. 여기서만 볼 수 있는 작품이자 상품이다. 

장터에 나오기 위해 경쟁도 치렀다. 120명이 지원해서 41명이 선발됐다. 동시대 예술이 자본, 유통체계와 접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것이 미술관의 설명이다. 서울시립미술관 김홍희 관장은 21일 개막행사에서 “세마 창고 쇼케이스에 나온 아트상품은 실용적이면서도 예술성이 배어 나는 ‘메이드 바이 아티스트’ 제품”이라며 “오늘은 예술가들을 위해 지갑을 활짝 열어달라”고 했다. 

서울시 예산으로 운영되는 서울시립미술관은 예술작품과 자본의 만남에 관심이 많은 기관이다. 지난해에는 실험적인 작품을 고객에게 직접 판매하는 ‘세마 창고 아트페어’를 열어 한 차례 논란이 일기도 했다. 본래 미술관에서는 작품을 판 수 없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상업 화랑들의 모임인 한국화랑협회에서는 “서울시립미술관이 서울시립화랑이냐”며 판매 중단을 촉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