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마케팅연구소 김용빈 소장, 국제개발학 박사

최근에는 상당히 안전하게 느껴지던 대국 에티오피아가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우리 국회 국정감사장에서는 한 국회의원이 아프리카로 청년들을 보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하필이면 나이지리아와 콩고를 예로 드는 바람에 한번 더 불쾌한 관심을 받기도 했다. 나이지리아는 전국의 절반이 철수권고, 나머지는 여행자제 지역으로 우리 외교부가 분류하고 있다. (민주)콩고 역시 동부가 철수권고, 그 외 전국이 여행유의 지역이다. 해당 국회의원에 대한 비난과 함께 이런 사실이 SNS를 장식하면서, 다시 한번 아프리카는 위험하기만 한 곳으로 각인됐다. 아프리카로 출장간다는 사람이 있으면 걱정스런 질문을 할 만하다.

아프리카와 관련한 일을 21년째 해오는 필자에게 “강도를 만나거나 절도를 당한 적이 없냐?”고 물어올 경우 “그런 일 없었다”고 대답하면 “비결이 무엇이냐”고 항상 되묻는다. 마치 아프리카 출장 길에는 으레 노상강도 한번 쯤은 당해야 정상 아니냐는 것처럼 들린다. 비결이 따로 있나?

우선 아프리카는 생각처럼 그렇게 위험한 곳만은 아니다. 54개국이나 되다 보니, 산 사람에게 총을 들이대고 돈을 달라지 않고, 일단 사람을 쏘고 나서 시체를 뒤져 돈을 털어간다는 정말 지옥 같은 나라가 있는 반면 오밤중에 한국 처자들이 현지인 아저씨들이 모는 오토바이 뒤편에 매달려 다녀도 사고 한 건 없는 멀쩡한 나라도 있다.

2015년 2월, 나이지리아 북동부 Gombe주에서 Boko Haram에 맞서는 자경단.<사진=위키피디아>

그렇다고 사업하는 사람이 안전한 나라만 골라서 돌아다녔을 리 없다. 그럼에도 사고가 없었으니 그 비결을 다시 물어온다면, 대부분은 ‘운이 좋아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한가지 더한다면 ‘늘 조심하는 자세를 유지해 왔다’는 것 정도다. 조심하는 자세라, 한 마디로 “가지 말라는 곳은 가지 않았고, 하지 말라는 짓은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고스톱에서 흔히 얘기하는 ‘운칠기삼’에 빗대 ‘운칠조(조심)삼’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즉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부분에 조금 더 신경썼다고 말할 수 있다.

창문 면적, 창틀 재질, 창살 간격 보고 치안상태 판단

한 나라를 처음 방문할 때, 공항에서 호텔로 이동하면서 무엇을 주로 보는가? 필자는 길거리에 늘어선 집의 창문을 유심히 살펴본다. 경험을 통해서, 각 아프리카 국가의 치안 상태와 창문 형태 사이에 깊은 인과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빅맥지수나 체감온도와 같은 일종의 체감지수인데, 이를 ‘창문지수(Window Index)’라고 이름 붙였다.

창문지수는 민가의 벽 면적에서 창문이 차지하는 면적, 창틀의 재질, 창살의 유무와 재질, 간격 등을 측정해서 각각 가중치를 주고 이를 종합해 만든 합성지수(composite index)다. 예를들어 벽에서 창문이 차지하는 면적이 크지 않으면, 위험한 것으로 판단한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무서워 창문을 크게 내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다. 또 창틀 재질이 단단하거나, 창살 폭이 조밀조밀하면 이 역시 위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로지 필자의 경험과 느낌을 기초로 해 암산으로 대충 만들었기 때문에 어디 한번 보자고 하면 딱히 내놓을 자료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곳은 저 곳보다 좋다 혹은 나쁘다 정도 차이는 확실하게 기억하는 편이다. 국가별·지역별로 이 지수가 다 다르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부근 Soweto의 민가. 감옥이 아니다.<사진=위키피디아>

이 창문지수를 통해 각 국가와 지역의 치안상태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게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무조건 조심하면 된다는 얘기는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다. 하루 이틀도 아닌데, 출장 다니면서 계속 최고도의 긴장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 가장 적당한 수준에서 안전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럴 때, 창문지수는 매우 유용한 지침이 돼준다.

언뜻 보기에는 유럽처럼 느껴지는 매우 멀쩡한 나라인데, 창문지수 상으로 치안이 엄청 불안한 나라가 있다. 바로 남아공이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에 남아공 4곳 선정

남아공은 1994년까지 백인이 통치하면서 겉모습이 유럽 같은 아프리카 국가다. 주요 도시와 도로, 공항 등을 보면 마치 중부 유럽과 비슷하다. 그런데 오랜 세월동안 단 한번도 길거리를 걸어본 적이 없다. 필자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현지인들도 일부 도심이 아니면 여간해서 길거리를 걷지 않는다.(물론 걷는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은데, 정말 아무 것도 털릴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다.)

남아공의 치안상태는 어떤 수준일까? 필자의 창문지수로 판단하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보다 좋지 않다. 멕시코 NGO인 치안·사법정의시민위원회(Consejo Ciudadano para la Seguridad Pública y la Justicia Penal)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 50’에도 포함돼 있다. 전쟁중인 도시를 제외하고 인구 30만 이상인 도시를 대상으로 인구 10만명당 살인사건 발생 수를 기준으로 선정한다. 여기서 42개 도시는 중남미에 있다. 브라질이 혼자 21개를 차지해 압도적 1위다. 나머지는 미국과 남아공이 각각 4개씩이다.

브라질은 해마다 총기로 사망하는 사고만 3~4만명에 달한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민간인이 이렇게나 많이 총에 맞아 죽는 나라는 없을 것이라는 브라질 친구의 넋두리가 생생하다. 베네수엘라, 멕시코도 만만치 않다.

미국은 일부 지역(구체적으로 세인트루이스, 볼티모어, 디트로이트, 뉴올리언즈)의 치안 상황이 심각한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연이은 백인경찰의 흑인 총격사망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미국의 치안문제는 인종차별, 빈곤(인구 3억명 가운데 5000만명이 빈곤층으로 분류된다) 등 여러 가지에서 비롯된다.

남아공의 흔한 도시 외곽 풍경<자료=남아공 도로공사(South African National Roads Agency)>

치안 불안한 남아공…교민들도 택시 안타

우리 기억을 되살려 보자. 2005년 1월,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김태희 남아공 강도’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김태희는 화보 촬영차 남아공을 방문했고, 강도들이 숙소를 습격해 사람들을 화장실에 가둬놓고 금품을 훔쳐 달아난 사건이다. 남아공의 치안 문제는 아프리카에서 처음 열린 2010년 월드컵 때 다시 입방아에 오른다. 남아공 정부는 군대까지 동원해서 치안을 지키려 노력했지만, 일상화된 강·절도 사건은 ‘대목’을 만나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 월드컵 기간 중 교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거리 풍경을 담아오겠다며 아무 방비없이 길거리로 나섰던 PD가 대낮에 방송용 카메라를 뺏기기도 했다.

필자가 직장생활을 할 때 남아공 최대도시인 요하네스버그에서 주재원들이 모인 적이 있었다. 남아공에 처음 온 임원이 마중나온 주재원의 차 안에서 물었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택시로 가면 얼마인가?” 주재원 5년차인 그는 모른다고 답했다. 한번도 택시를 타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필자가 출장을 나오면 한밤중이든 새벽이든 항상 주재원이 마중을 나왔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택시를 탈 때는 타는 사람 마음이지만, 내릴 때는 기사 마음이란다. 교민들도 택시를 절대 타지 않는다고 했다. 한번은 우리 정부 사절단을 공항에서 환송하고, 다음날 이웃나라로 출발할 필자와 가이드를 했던 게스트하우스 사장만 공항에 남은 적이 있었다. 전세낸 버스는 이미 가버렸다. 얼떨결에 교통수단이 없어진 것이다. 이때 그 사장은 같은 타운에 사는 이웃 교민에게 전화해 우리를 데리러 공항까지 수십 킬로미터를 나와 달라고 부탁했다. 너무 큰 민폐인 것 같지만, 치안 상황이 열악해 그 정도는 서로 돕는다고 했다.

치안과 관련된 일화는 이밖에도 많다. 여행상품을 설계하기 위해 처음 방문한 출장자가 시험삼아 버스에서 내려 요하네스버그 거리를 걷다가 몇 걸음도 못가서 강도를 만나 몽땅 털렸다는 얘기, 그리고 나서 계속 걷다가 그 블록을 못 벗어나서 다른 강도를 만나 “방금 털렸다”고 하니, “우이씨, 한발 늦었군!” 하며 순순히 물러가더란 얘기도 있다. 또 무장경비가 보는 앞에서 털리기도 했다. 무장경비는 권총이었지만, 승합차에서 내린 강도 무리는 자동소총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차량에서 총을 쏘며 쫓는 강도단을 피해 경찰서로 진입해 겨우 목숨을 건진 얘기도 또 다른 동료의 체험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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