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카드, 대통령이 던진 메시지에 대한 재계의 반응은 다소 의외다. 특히 박 대통령의 개헌주장은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 말미에 나온 것이고 전반부는 예산안에 대한 설명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발언의 파급력으로 치자면 개헌주장이 압도적이다. 그러나 시정연설 대부분의 내용은 창조경제, 문화융성, 미래성장동력 등과 같은 경제문제라는 점에서 이해관계 당사자인 재계의 반응이 나올 법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개헌 추진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예상은 빗나갔다. 전경련, 경총 그리고 대한상의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우려했던대로 개헌이란 불랙홀이 한국경제의 모든 문제를 빨아들인 꼴이다. 또 대통령의 결정에 대해 이런 저런 토를 다는 경우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경험칙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한국경제 산업생태계에서 ‘을’의 위치, 말단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중기중앙회만이 쌍수를 든 것은 의외다.

중기중앙회는 이날 논평을 통해 “중소기업계는 국가운영의 중장기적인 큰 틀을 바로 세우고,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개헌을 국정과제로 추진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크게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어 “창업활성화와 중소기업 혁신을 비롯한 창조경제 생태계 정착, 일자리 창출예산 확대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2017년도 예산안에 대해서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생각한다”며 대통령의 의지에 힘도 보탰다.

돌이켜보면 박근혜 정부 이전 문민정부만 따져도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가장 홀대 받았던 부문이 중소기업이다. 이들 정권 내내 중기중앙회가 회원사인 중소기업인·소상공인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고,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실질적인 행동을 보여줬는지는 사실 의문이다. 박근혜 정부에 들어와서도 별반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번 정기국감을 통해 정책금융, 세액공제, R&D, 법인세 실효세율, 수출지원 등에 대한 중소기업 차별사례는 차고 넘치게 나왔다. 그럼에도 중기중앙회는 예전과 다름없는 동일한 톤으로, 똑 같은 목소리를 반복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아쉬움이 크다.

한국사회 산업생태계에 대한 중기중앙회의 진단은 정확했다. 중기중앙회는 이날 논평을 통해 “대기업 중심의 성장공식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대기업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는 고용 없는 성장, 국민소득 증가 정체, 생산요소 편중, 경제주체의 이중구조 심화라는 근본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진단에 대한 해법으로 중기중앙회는 “대한민국 헌법 개정을 통해 우리경제의 한계를 넘어 고용창출형 성장, 임금양극화 완화, 합리적인 자원배분, 균형적인 성장이 지속될 수 있는 중소기업 중심 경제구조로 전환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대·중소기업간 불균등성장, 불합리한 차별를 해소하기 위해 가장 적절하고 유효한 수단이 헌법개정이라는 주장은 논리의 비약 차원을 떠나 해독 자체가 불가하다. 중기중앙회는 나아가 “향후 헌법 개정을 위한 위원회 구성시 중소기업계 인사가 포함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까지 의견을 피력했다. 중기중앙회에서 한두 사람이 헌법논의에 참여한다고 헌법개정안이 중소기업에 유리한 내용으로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지금도 헌법 제123조는 중소기업 보호 및 육성에 대한 의무를 국가에 부과하고 있다. 헌법을 바꿀 것이 아니라 헌법 제123조를 구체화할 수 있는 법률제정이 더 빠르고 쉬운 길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하루 하루 기업의 생존을 고심하는 중기중앙회 회원사인 대다수 중소기업인·소상공인들이 이날 논평을 용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너무 나갔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차라리 정치적 판단력이 남다른 전경련, 경총 그리고 대한상의와 사전에 얘기했었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해 본다. 중기중앙회 얼굴도 세우고, 회원사들의 눈총을 받지 않기 위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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