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진실은 받아들이기 고통스러워 차라리 현실이 아니기를 바랄 때가 있다. 어제는 그런 날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개헌카드까지 꺼내들었지만, 비선실세 최순실의 ‘빨간펜 정치’는 어떻게 해도 덮을 수가 없었다.

민간인 최순실이 대통령 발표 자료부터 민감한 국가기밀까지 보고받으며 비선 실세 노릇을 했다는 JTBC의 보도. 실체도 알수없는 일반인이 국정을 농단하고 국민을 기만하고 있었다. 이런 나라에 살고 있다니, 부끄럽고 참담하다. 25일 오후 4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국민의 분노에 오히려 불을 지폈다. 2분이 채 되지 않는 사과 발표에는 각종 의혹에 대한 답과 해결책은 없었으며 “조금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개인적인 문제로 어물쩍 넘어가려는 듯 한 변명만 있었다. 기자회견은 녹화로 진행했으며, 회견문 발표 후에는 기자들의 질문조차 받지 않은 채 현장을 떠났다. 발 등의 불 끄기에만 급급할 뿐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다.

국민의 자존심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진정 이것이 국가인가’라는 탄식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온다. 포탈사이트마다 실시간 검색어에는 탄핵, 하야 등의 검색어가 상위권을 지켰다. 대학가에서는 ‘2016년 대한민국 국민인 우리는 지금 어떤 나라에 살고 있는가’를 물으며 시국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29일 대통령 탄핵요구 집회를 예고하기도 했다. 정부여당도 대통령을 마냥 감쌀 수만은 없게 됐다. 대통령의 사과는 충분치 않았고, 사과만으로 끝날 일도 아니다. 국민들의 상실감, 허탈, 분노….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져야 한다. 다시한번 질문을 던져 본다. 이것이 정말 국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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