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예산안 시정연설을 시작으로 이른바 ‘슈퍼예산’을 둘러싼 예산안 전쟁이 시작됐음에도 아직 총성 한방 울리지 않고 있다. 정작 전쟁은 다른 곳, 충분히 예상되긴 했지만 최순실 모녀가 판을 벌인 마당에서 불이 붙었다. 국정농단을 넘어 대통령은 최순실이고, 박 대통령은 부통령이라는 ‘사실관계’가 지면과 방송을 통해 온 천하에 드러났다. 바라건대 전쟁의 와중에도 야3당은 당초의 공격목표가 ‘꼼꼼한 심의’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특이 본말조차 알 수 없는 지금과 같이 어지러운 시기엔 더욱 그렇다.

내년 정부세출예산 규모는 400조7000억원. 올해 추경을 포함 정부의 재정지출액 389조6000억원 보다 2조 가량 증액된 금액, 증가율은 0.6%에 불과하다. 세출예산규모에 대해 박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 “내년 예산안은 중장기 재정 건전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확장적으로 편성했다”고 했다. ‘최대한 확장적’이란 표현에도 불구하고 내년 예산은 긴축예산이고 아무리 선의로 해석해도 동결예산이다. 저출산 고령화에 따라 자연증가되는 내년 사회보험 지출규모만 2조원을 웃돈다. 돈 쓸데(세출)가 없어서 또는 돈 걷을 여력(세입)이 없어서라면 이해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지난 7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성장률 2.6% 중에서 재정의 기여도는 3분의1 가량인 0.8%였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지 않고 민간에만 맡겼을 경우 성장률이 1.8%에 그쳤다는 얘기다. 성장률에서 재정의 기여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2011년 우리나라 경제규모는 3.7% 성장했는데, 재정기여도는 0%였다. 이후 2012년 0.4%, 2013년 0.6% 순으로 높아졌고, 작년에는 0.8%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재정의 기여도가 해가 거듭할수록 높아지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 하락에 따른 것이다. 글로벌 차원의 저성장기조가 사실상 고착되고 있는 가운데 이미 바닥을 드러낸 한국경제의 기초체력을 보완하기 위해 재정투입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정부가 계속해서 ‘긴축’예산을 고집하는 이유는 ‘균형재정’을 목표로 한 재정운용계획 때문이다. 그렇다고 박근혜 정부가 균영재정 목표를 달성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지난 23일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의원에 따르면, 내년까지 박근혜 정부가 5년간 발행한 적자국채 규모는 164조8000억원으로 연평균 33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107조원(연평균 21조4000억원)보다 54% 많고, 노무현 정부의 32조3000억원(연평균 6조5000억원)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많다. 재정운용계획은 계획일 뿐이지 실제 균형재정 목표도 달성하지 못했고, 재정확대를 통한 성장에 대한 기여도 역시 미미했다.

세수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국세청의 국세통계를 인용한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최근 자료에 따르면,  2011년 180조원이었던 총세수가 2015년 208조원으로 15.5% 늘었다. 이 가운데 소득세는 2011년 43조원에서 2015년 62조원으로 46.3%증가했고, 특히 근로소득세는 같은 기간 19조원에서 28조원으로 49.5%나 급증했다. 반면 법인세는 2015년 45조원으로 2011년 대비 0.3% 늘어난데 그쳤다. 총 세수 대비 법인세율은 2011년 25%에서 2015년 현재 22%로 계속 감소하는 추세다. 정부가 근로자들에게는 수건으 쥐어짜듯 세금을 걷은 반면 기업, 특히 대기업에는 하해와 같은 배려를 통해 세금을 깎아줬다. 많이 벌면 세금도 많이 부과한다는 조세의 기본원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가 당초 계획한 재정균형은 달성될 수 없는 목표였다.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의원에 따르면, 30대 대기업집단의 현금성자산은 2007년에는 53조원에 불과했으나, 2015년 126조5000억원으로 2배 이상 늘었다. 20대 국회에서 야3당이 앞다퉈 법인세와 소득세 인상을 내용으로 하는 세법개정안을 쏟아내는 배경이다.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중국을 포함한 세계경제의 저성장기조가 지속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대내외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경기부양을 위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확대를 통해 총수요를 늘여야 한다는 것이 경제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특히 당면한 조선·해양업, 그리고 철강 및 석유화학에 대한 구조조정을 포함 산업구조 재편, 청년실업을 포함 양질의 일자리 창출,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복지제도 정비 및 확대, 저소득층에 대한 소득증대 방안 마련, 사회안전망 확대 등 불요불급한 세출항목은 차고 넘친다.

나라살림에서 세입·세출의 균형재정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필요한 경우 적자재정을 통해 총수요을 창출해 소득을 증대하는 것과 함께 생산과 분배를 통해 적자재정을 균형재정으로 돌리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여소야대인 20대 국회 첫 예산안 심의다. 예산안 세부내역에 대한 정밀한 검토도 필요하지만 서민복지 그리고 경제민주화에 맞는 제도와 관행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8시간 노동으로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고, 극단적인 불평등구조를 개선할 수 할 수 있는 장기적인 재정운영방안 대한 심도 깊은 논의와 결정이 있기를 기대한다. 세수확보 측면에서 무엇보다 그 시작은 법인세 인상이다.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관련기사 ㅣ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서민증세’
• 관련기사 ㅣ 미르·K스포츠 없으면 법인세 등 183억 더 걷혔을 것
• 관련기사 ㅣ 대기업 세부담은 제자리…중소기업은 세금폭탄
• 관련기사 ㅣ 법인세 1.8조 늘었는데 중소·중견이 1.7조를 채워
• 관련기사 ㅣ “과표 500억 초과 대기업 법인세 25%로 인상”
• 관련기사 ㅣ 과표 5백억 초과 법인세율 22%→25% 상향
• 관련기사 ㅣ 임대소득세, 예정대로 내년에 부과해야
• 관련기사 ㅣ 경제·재정전문가 10명중 7명 “증세 필요하다”
• 관련기사 ㅣ 기업, ‘법인세 인상’ 감내할 체력 갖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