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시대와 제4차 산업혁명을 대비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해야 한다는 얘기가 넘쳐난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만이 늘 풍요로움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19세기 초 영국에서 있었던 ‘러다이트’ 운동은 기술과 인간의 갈등을 대표적으로 드러낸 역사적 사건이다.

2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저성장 시대의 중소기업 발전전략’ 세미나는 그간의 세미나와는 사뭇 다른 얘기가 나왔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동경대학교 후지모토 다카히로 교수는 “저성장 시대에 중소기업들이 성장을 고민하는 이유는 이익을 내면서 사람을 구조조정 하지 않기 위함”이라며 “고용을 유지하면서 현장이 살아남는 이익창출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후지모토 교수는 일본의 한 조선업 회사를 예로 들었다. 일본 조선업도 어려움을 겪기는 한국과 마찬가지였다. 후지모토 교수가 예로 든 회사는 한때 조선업 공장 옆에 고구마를 재배하며 소주제조회사를 병행했다고 한다. 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하나의 극단적인 예로 치부할 수 있지만, 후지모토 교수는 “CEO가 고용유지를 위해 이러한 노력까지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후지모토 교수는 “저성장이 되면 인력 잉여가 생기는 것은 하나의 과정이지만, 잉여인력을 구조조정해 비용을 감축함으로써 생기는 이익으로 주주들만 기뻐한다”며 “중소기업들은 공동체 지역의 일부다. 고용을 줄이면 결국 지역경제가 위축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예로 든 조선업 공장을 찾아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CEO에게 물으니 “인력”이라고 답했다는 말도 전했다.

국내에서 최근까지 진행됐던 저성장과 제4차 산업혁명 대비 관련 세미나의 주요 주제는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가상·증강현실, 자율주행차 등 모두 과학기술에 초점이 맞춰졌다. 세미나에 참석한 발제자와 토론자도 그리고 이들의 논쟁 또는 토론을 지켜보는 사람, 그 누구도 사람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최소한 오늘 후지모토 교수의 지극히 당연한 말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제4차 산업혁명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적은 과학기술 활용을 통해 인간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자는 것이란 근본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흔히 일본은 한국의 10년 후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후지모토 교수의 발언은 한국이 10년 후해야 할 고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한국도 이에 대한 고민을 10년 후에 할 것인가? 한국사회는 이미 저성장시대 한복판에 서있다. 후지모토 교수와 같이 생각하는 지식인, 기업인들을 우리사회가 지속적으로 배출하지 않는다면 현대판 러다이트가 한국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