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시대의 중소기업 발전전략’ 세미나에서 서울대 국제대학원 김현철 교수는 “지금의 위기는 과거 단발성 위기와 다른 장기적·구조적 위기”라고 말했다.   ©중기이코노미

저성장시대 “신기술보다 기존기술 가치를 올려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한국 GDP성장률은 1980년 -1.7%를 기록했지만 1981년 7.2%였다. 또 1998년 -5.5%였지만 1999년 11.3%로 급상승했다. 2009년 금융위기때도 0.7%에서 2010년 6.5%로 수직상승했다. 지금까지 위기라고 한 시기들은 모두 ‘V’자 위기였다. 1년만 버티면 모두 예전의 수치로 돌아왔다. 하지만 현재 저성장의 위기는 ‘L’자형 위기로, 위기국면이 상당기간 지속된다. 2011년 한국의 GDP성장률은 3.7%를 기록한데 이어 2014년 3.3%를 제외하고는 올해까지 4년간 2%대를 기록하고 있다.

김 교수는 “과거 ‘한해만 버티면 해결된다’는 성공체험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한국경제가 성장하던 시기라 가능했다”며 “2011년 수출버블 붕괴 후 2012년에 회복하지 못했다. 2014년은 세월호사건, 지난해는 메르스 때문이란 말이 많았다. 그런데 올해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반등하지 못했다. 내년도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금융연구원 역시 2017년 총수출 증가율은 -0.4%지만 총수입은 -2.4%로 더 크게 하락해 불황형 흑자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복합형 불황은 저성장 극복을 더욱 어렵게 한다.<자료=김현철 교수>

저성장 시대엔 가계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국내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 및 전망 보고서’를 보면, 올해 2분기 말 가계부채 규모는 1257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3조원 늘었다. 저임금·저소득은 가계소비를 위축시키고 기업매출의 정체로 이어진다. 기업으로서는 나날이 상승하는 원가압력에 맞춰 투자를 줄인다. 줄어든 투자는 고용 및 임금하락으로 이어져 가계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정부 입장에서 가계와 기업의 불황은 세수감소다. 불황이 이어지면서 지출할 곳은 많아져 재정적자가 커진다. 세수가 부족하니 경기부양정책에 한계가 있고, 가계의 소비부진을 만회하기 힘들다. 구조적 악순환이다. 여기에 저출산·고령화에 따라 생산가능인구도 감소하고 있다. 김 교수는 “현재의 위기는 복합불황이다. 구조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시기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존 거래처 유지…틈새(Niche) 찾아 해외진출

이런 위기 속에서 중소기업은 어떤 전략을 택할 수 있을까? 김 교수는 “기존시장·거래처를 포기할 수는 없다”고 했다. 무작정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 보다는 기존 거래처를 생존기반으로서 잡고 있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기존 시장을 사수한다는 것은 기존 고객을 유지한다는 것이며, 저성장국면을 오히려 기존 고객과 한층 더 강한 관계로 구축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예를들어 자동차 판매사라면 신차구입을 시작으로 차량등록, 할부판매, 보험, 중고차구입 및 판매 등 자동차와 관련된 전체 서비스를 개선해 깊이 있는 관계를 만들 수 있다.

기존 시장을 지키는 전략방향은 기업이 차지하고 있는 시장 위치에 따라 다르다. 현재 시장을 리드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기존 거래처를 기반으로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거나 지키려는 방어적 전략을 취할 수 있다. 반면 창업기업이라면 선행기업과 차별화한 도전적인 전략을 세워야 한다. 후발주자라면 시장을 리드하는 기업들을 모방하는 것만으로도 시장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를 수 있다.

김 교수는 “이제는 일반음식점까지 해외로 진출하는 시대다. 저성장시대 중소기업들의 생존전략은 해외진출로 이어져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때 중소기업이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은 로컬지역에서 범용화된 기술을 글로벌 독자제품으로 연결하는 ‘Global Niche Top’이다. 다방면으로 힘쓰기 어려운 중소기업에 집중을 강조한 것이다. 

이런 ‘Niche Top’ 기술은 두가지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 첫번째는 국내에서 범용화된 기술을 독자제품화한 후, 이를 해외시장에 맞게 변형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반대로 국내에서 범용화된 기술을 영업력을 통해 해외 시장에서 판로를 확대한 후, 기술혁신을 통해 독자제품화하는 방향이다.

중소기업의 해외진출 전략은 틈새시장을 공략한 ‘Global Niche Top’이어야 한다.<자료=김현철 교수>

“중소기업이니까 해외로 나갈 수 없다는 건 핑계다”

김 교수는 “중소기업이니까 해외로 나갈 수 없다는 건 핑계”라며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의 GDP성장률은 연 9%에 이른다. 이들 국가들은 아직도 블루오션이다.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처럼 넓은 시장을 대상으로 많이 진출하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 아니라, 기술의 집중력을 통한 ‘Global Niche Top’의 자리를 목표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고성장 시기에는 제품이 조금 비싸더라도 품질이 뛰어나면 오히려 프리미엄이 붙어 기대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 그러나 저성장은 모두가 조금이라도 더 싼 제품을 찾는다. 기존 거래기업도 마찬가지다. 거래관계는 유지해도 원가를 깎거나 조달가격을 낮추려한다.

김 교수는 “도요타의 경우 기업의 가치사슬을 구성하는 각 부문을 슬림화하고, 자사뿐만 아니라 1·2차 협력회사, 물류회사, 딜러 판매점에까지 철저히 관여해 비효율을 줄이고 원가를 절감했다”며 “이를 통해 리콜사태에 따른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제품의 가치혁신·원가절감…저성장 때문이 아니다

원가절감은 제품의 가치를 혁신하는 것과 동반해야 한다. 김 교수는 “유니클로는 기능성은 살리면서 가격은 저렴한 제품을 내놓음으로써 시장점유율을 높였다”며 “유니클로의 브랜드명이 독특한 의류창고(Unique Clothing Warehouse)에서 유래한 것에서 보듯, 제품의 생산에서 직영점을 통한 판매에 이르기까지 제품의 가치상승이 원가절감과 맞물리며 성장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물론 중소기업으로서는 ‘현재 기업운영도 힘든데 기술에까지 어떻게 투자하느냐’, ‘원가절감이란 것이 투자한다고 쉽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저성장 시대에 기술개발에 들일 돈이 어디 있냐고 말하지만, 그래도 해야한다. 이것을 못하면 도태하는 것이 저성장 시대”라며 “제품의 가치혁신과 원가절감을 위한 노력은 기술혁신으로 이어지며, 이는 저성장 때문이 아니더라도 기업에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일본전산의 나가모리 사장은 기술자 출신임에도 영업력을 강조했다.<자료=김현철 교수>

“기술은 우리가 세계 최고니까 팔린다는 생각은 잘못”

김 교수는 이와함께 “좋은 제품이라도 팔리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며 매출을 유지할 수 있는 영업력을 강조했다. 정밀 소형모터 개발·제조 분야에서 세계 최고로 인정받는 일본전산의 나가모리 사장은 “기술은 우리가 세계 최고니까 팔린다는 생각은 잘못”이라며 “회사에서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이 영업이고, 두번째도 영업”이라는 말을 남겼다. 나가모리 사장은 기술자 출신임에도 오히려 영업을 강조한다.

김 교수는 “한국은 그간 지나치게 ‘대마불사’에 빠져있었다”며 “과거 빙하기에는 몸집이 큰 공룡들은 살아남기 힘들었다. 지금 저성장이라는 빙하기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중소기업과 같이 변화가 빠른 기업이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경쟁사보다 빨리, 적극적으로 고객을 찾는 영업이 저성장기에 회사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고 했다. 또 “앞으로 수십년은 중소기업이 끌어야 한국이 살 수 있다”며 “중소기업 CEO들이 이런 사명감을 가지고 기업을 이끌어야 저성장 국면을 타개해 나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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