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육연구소 안호덕 객원연구원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게 있기 마련이다. 기업이 떳떳하지 못한 돈을 주었으면, 권력은 특혜로 보답하는 것이 정경유착이다. 롯데그룹은 70억원을 헌납했다. 몇달 후 총수일가를 정조준했던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수사는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을 제외하면 단 1명도 구속하지 못했다. 신 이사장 구속사유도 당초 검찰의 수사방향인 총수일가의 비자금 조성 등과 무관한 정운호 게이트 관련 혐의다. 200여억원을 낸 삼성그룹 그리고 이재용의 3세 승계를 위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표를 던진 국민연금. 이들의 관계를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눌 수 있을까?

정권 실세가 원하는 곳에 수억, 수십억을 헌납하고 총수일가가 범죄행위에 대한 처벌을 면했다면 기업은 결코 밑지는 장사를 한 것이 아니다. 대통령보다 더 막강한 실세 딸의 승마 뒷바라지를 통해 논란이 된 승계문제를 아무 탈 없이 마무리했다면, 이는 정경유착일 뿐이다. 세무조사를 무마하고, 총수일가의 구속을 면하고, 승계문제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마무리한 기업들. 이제와 피해자 운운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우롱이다.

사실,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800억원을 헌납한 기업들이 정권에 부당한 편의와 특혜를 얻어낸 사례는 이것만이 아니다. 모금의 창구역할을 한 전경련은 기업의 이익과 직결된 규제를 풀라고 정권에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대통령은 창조경제라는 이름하에 규제철폐를 지시하고, 해당 부서가 팔을 걷고 나서 대기업의 요구를 들어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노동계의 최저임금 인상요구에 대한 전경련의 반대주장, 기업활동 위축 논리를 노사 당사자 이외 공익위원을 동원해 수용한 것이 정부다.

4일 박근혜 대통령의 2차 대국민담화와 관련, 야당과 시민단체 등에서 책임전가·검찰수사 가이드라인 담화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진정성 없는 개인반성문에 불과하다”며 “야당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정권퇴진운동을 하겠다”고 했고, 국민의당은 “자리보전과 꼬리자르기에 연연한다면, 하야·탄핵의 길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사진=뉴시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돈 뜯긴 기업이 피해자가 아니라 정경유착에서조차 배제된 중소기업과 모든 국민들이다. 정경유착과 공정한 시장질서는 양립할 수 없다. 특혜를 받은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출발선은 다를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기울어진 운동장인데, 정권은 불합리와 특혜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했다. 정권과 최씨일가 그리고 전경련과 기부금을 헌납한 대기업에 자유경제 시장질서를 어지럽힌 죄는 무엇보다 중히 물어야 한다.

국민의 피해는 규모조차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저임금과 손쉬운 해고, 전경련 요구를 수용한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은 가정경제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노무현·이명박 정부의 가계부채 총량보다도 많은 가계부채는 다시 빚을 내지 않으면 살 수 없도록 만든 저임금의 후과다. 청년실업, 1인 가정의 증가, 결혼포기, 저출산, 삶의 질 최저, 자살률 세계1위, 암울한 현실을 반영하는 수많은 키워드가 박근혜 정부의 정경유착과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한다면 억측인가?

최순실 국정농단에 국민들은 할 말을 잃었다. 내수경기도 멈췄고 수출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주가도 불안정하고 대외신인도도 걱정이다. 국민 모두의 심리가 공황상태라면 소비와 내수의 진작도 요원한 일이다. 한마디로 비상시국이다. 총리를 바꾸고 장관 몇 명을 교체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부정한 권력, 정경유착의 검은고리가 횡행하는 나라에서는 국민도 국가의 안녕도 장담할 수 없다. 비상시국(非常時局)이라면 비상(非常)한 대책이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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